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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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면서 2024년은 어땠는지 회상해보셨을 것 같아요.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에게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어떤 장면인가요?
저는 매년 여름 음악 페스티벌에 가는데요, 매년 한 해를 회상할 때면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어김없이 페스티벌에서의 장면들을 떠올리곤 해요. 일면식도 없는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함께 춤추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폭삭 젖어도 마냥 즐거운 순간들이요. 아마, 축제라서 가능한 것이겠죠. 일상에서 벗어난 딱 하루, 평소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것들로부터의 해방이 환영받는 곳.
이번 인터뷰에서 만나볼 대장은 공연예술축제 기획자로 활동 중인 ‘축제 대장’ 김민수 님입니다. 김민수 님은 안산국제거리극축제, 고양호수예술축제, 서울퀴어퍼레이드 등 국내에서 열리는 공연예술축제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오고 있어요.
김민수 님이 만드는 축제 속의 해방은 어떤 모습일까요? 김민수 님과의 대화를 통해, 축제가 관객에게 가닿는 의미를 살펴보아요.
By. Editor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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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수 님! <더 포지> 독자분들께 민수 님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공연예술축제를 만드는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민수입니다. 축제 기획뿐만 아니라 문화 전시 기획, 공연 연출, 비평, 웹진 운영, 음악 등 장르적 경계를 넘어 넓은 범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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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축제 기획에 발을 들이게 되신 건가요? 대학 시절 전공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제 전공은 건축이에요.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해서 건축학과에 들어갔죠. 음악 활동을 열심히 하던 대학 시절, 친구와 둘이서 문학과 음악에 대한 독립 잡지를 만든 적이 있어요. 그 잡지는 창간 준비로 끝났기 때문에 망한 프로젝트였지만(웃음), 어쨌든 문화콘텐츠학과를 다전공해서 기획을 더 공부해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그렇게 들어간 문화콘텐츠학과에서 축제 기획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요, 수업의 일환으로 ‘안산국제거리극축제’를 보러 갔어요. 그때가 딱 세월호 참사 다음 해였는데요. 단순히 지역 경기를 부양시키거나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축제가 아니라, 관객들과 슬픔과 위로를 나누고, 도시에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축제가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어요.
그리고 그때 마침, 대외활동으로 ‘대학로문화축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축제 쪽으로 빠져들게 되었죠. 그래서 축제 기획자로서 어디에서 데뷔했는지 묻는다면 저는 ‘대학로문화축제’라고 대답하고, 어떤 것이 기점이었는지 묻는다면 ‘세월호 참사 다음 해의 안산국제거리극축제를 본 것’이라고 대답해요.
축제 기획자로서 민수 님은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 주세요.
저는 주로 공연예술축제에서 활동하는데요. 축제의 목적에 맞게 어떤 공연을 올릴지 선정하고, 이를 어떻게 배치할지 예술가와 함께 고민하며 축제의 그림을 그리고 실현하는 역할을 합니다.
관객의 동선을 고려해서 화장실, 인포메이션, 분리수거 부스, 의료지원과 같은 부대시설의 위치를 정하고, 이를 위해 현장에 어떤 안내가 있어야 하며 인력이 어떻게 배치되어야 하고, 필요한 물자는 무엇이며 어떻게 배포할지 정리하기도 해요.
때에 따라 홍보물의 내용과 배포 시기, 홍보 채널을 정하는 일을 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대단히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결국 모두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라서 종일 메일을 쓰거나 메일에 첨부할 파일을 만드는 데에 쓰는 날이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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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기획자는 보통 직장인과는 일하는 루틴이 다를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일을 구하고, 또 어떠한 루틴으로 일하게 되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했어요. 안산문화재단에서 나온 계약직 공고에 지원해서 일을 시작했죠.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끝나고는 고양호수예술축제에 지원했어요. 이렇게 한 축제가 마무리되면 다음에 열릴 축제에 참여하는 식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주 만나는 축제 기획자 친구들 모임 이름이 ‘메뚜기 모임’이에요. 철마다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하니 그런 이름이 지어졌죠. 친구들 중에서도 저처럼 공연예술축제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영화제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관광축제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같이 일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함께 축제 기획 일을 하고 있어요.
재단이나 사단법인에서 매년 공고를 새롭게 올리는 축제들도 있지만, 한 번 지원해서 일한 다음부터 자연스럽게 매년 계속 일하는 멤버가 된다든지, 알음알음 용역으로 추천을 받아 일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어서 일을 구하는 경로는 매우 다양해요.
축제를 기획하고, 현장을 꾸미고, 축제가 탈 없이 돌아가도록 하는 다양한 단계가 있을 것 같은데요.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업무 자체가 어려운 거라면, 사실 그저 열심히 하면 되는 거라서 크게 어려움을 느끼진 않아요. 하지만 축제를 만들며 맞닥뜨리는 정치적 외압이나 행정적 한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곤 해요.
지방선거를 앞두고 축제에 예술검열이 자행되는 가운데에 있기도 했고,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피해당사자인 단체에서 일하기도 했고,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기에 더 크게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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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서울 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퍼레이드 축제 당일,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다. / 출처 : 서울퀴어문화축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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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축제 현장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축제 기획자로서 ‘어떤 축제가 더 필요한가, 어떤 축제가 멋있고 의미 있는 거지?’라고 고민해 보았을 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가장 멋지고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축제의 일원이 되어서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멤버 모집 공고에 지원했고, 이제 어느덧 일한 지 4년 차가 되었네요.
축제 현장에서 가장 뿌듯했던 때를 꼽자면, 제가 서울퀴어퍼레이드 공연팀 멤버로 참여하게 된 첫해가 떠올라요. 원래 축제 순서는 공연을 하고, 연대 발언을 하고, 축제 참여자들이 외부로 행진을 다녀와서 마무리 공연을 하고 마무리되는 순서예요. 그런데 연대 발언을 하는 중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정된 스케쥴보다 빠르게 행진을 내보냈어요.
문제는, 그때부터 비가 미친 듯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무대 위에는 음향시설이 달려 있는데, 때마침 크레인 기사님들께서 자리를 비우신 바람에 음향시설이 비에 완전히 젖어버렸어요. 다음 공연을 못 하게 된 거죠. 어쩔 수 없이 행진이 끝나면 곧바로 축제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일정을 바꿨어요.
그런데 비닐 처리를 해두었던 모니터 스피커는 소리가 조금 나서, 공연 밴드 멤버들과 사회자와 스태프들이 ‘이렇게 된 거, 그냥 우리끼리 춤을 추자!’ 해서 무대 위에서 춤을 췄어요. 광장에 남아있던 관객들도 깔깔깔 웃어줬죠. 얼마나 웃겨요, 예고도 없이 스태프들이 무대에서 비를 맞으며 춤을 추니까요. 그렇게 춤을 추고 내려왔는데, 비가 그치고 해가 뜨는 거예요. 때마침 행진이 끝난 관객들이 광장으로 돌아왔어요. 공연이 취소된 브라질리언 타악 밴드 ‘호레이’ 멤버들과 행진을 마치고 돌아온 관객들이 갑자기 맑게 갠 서울 광장에 얽혀 타악을 하면서 놀기 시작했어요.
평소에 퀴어라는 존재는 숨겨져야 하는 사람들이고, 도시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인데 서울퀴어퍼레이드는 딱 하루, 서울 시내 중심부를 점유하고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자리인 거잖아요. 음향도 전부 망가지고 축제 일정도 일부 취소하게 되어 ‘망했다’며 좌절하고 있는데, 장대비를 뚫고 돌아온 관객들이 광장에서 춤을 추면서 하나가 되는 그 순간. 전날 잠도 안 잤는데 에너지가 폭발하는 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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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는 김민수 님의 모습 / 출처: 서울프린지페스티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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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기획 외에도 문화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우선 ‘민수민정’ 팀, ‘김선율’ 팀에서 음악을 만들어 전시와 공연을 올리고 있고,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에서 예술 비평도 하고 있어요. 또 독립예술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2년간 상근직으로 지내다 나온 후, ‘프린지 살롱’이라는 예술인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기도 했어요. 영상 제작 외주 작업을 하는 동시에 연극 PD로서 활동하기도 하는데, 지난 여름에는 페미니즘 연극제에 연극을 올렸어요.
최근 한 일 중에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태국-한국 간 퀴어예술 교류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현재는 친구와 함께 일본 홋카이도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하고 있어요. 올해 5월에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이고, 영화제에 출품해보려고 해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기획하고, 꾸려가고 계신 것 같아요. 민수 님의 일을 한 단어로 응축한다면 무엇일까요?
저도 사실 잘 모르겠는데,(웃음)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예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이 기획, 창작, 비평으로 분야가 나뉘어 있다고 하지만 저는 그게 그렇게 다르다고 느끼진 않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축제 기획이 예술 창작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배우와 연출가가 서로 제안을 통해 장면을 엮어서 연극을 만드는 것과, 좋은 예술 작품을 선정하고 배치해서 축제를 만드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어떤 작품을 선정해서 축제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 하는 기획자로서의 고민을 글로 옮기면 비평이 되는 거라고 보고요. 결국 기획, 창작, 비평이 저에게는 모두 비슷해서, 그냥 ‘예술을 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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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을 하는 동력은, 눈에 보이진 않아도 분명히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자긍심인 것 같아요.” / 출처: 서울프린지페스티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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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재밌게 일한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민수 님이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돈이 되거나, 의미가 있거나, 재미가 있으면 해요. 돈이 안 돼도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으면 하는 거고, 의미가 없어도 돈이 되고 재미도 있으면 하는 거고, 재미가 없어도 돈과 의미가 되면 하는 거고요.
무엇보다 저는 제 일이 재미있어요. 동선에 따라 관람객들의 시선이 닿는 풍경은 어떠해야 하는지 상상하는 것이 즐거워요. 머릿속으로 그렸던 것들이 현장에서 실제로 구현이 되면 정말 뿌듯하고, 그게 기획을 하는 가장 큰 재미인 것 같아요.
예전에 한 예술가의 좌담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예술가로 살면 조금 궁핍해도 사람이 존엄을 가지고 살 수 있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거든요. 그러니까 연구자에게는 연구자의 자긍심 같은 게 있잖아요. 사람들이 ‘쟤는 백수야’라고 해도, ‘나는 내 연구가 있어’ 하는 자긍심이 있는 것처럼, 예술가에게도 ‘나는 나의 예술이 있다’는 것이 자긍심이 되어 주기 때문에 돈을 적게 벌더라도 괜찮을 수 있는 거라고요.
저도 제가 하는 활동들이 예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것이 주는 자긍심이 있어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자긍심이 제가 일을 하는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어떤 분야의 대장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흔히 대장에게는 어떤 탁월성 같은 것들이 요구된다고 생각하잖아요. 일을 잘 해야 하고, 매끈해야 하고, 깔끔해야 하고, 빈틈없이 꼼꼼해야 하고… 그런데 사실은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런 것들은 경력과 경험으로 해결되고, 나중에는 어떤 수월성을 갖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만의 고유성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민수한테 맡기면 이런 색깔로 나와, 민수는 이런 태도가 있어.’ 이런 것들이요. 그래서 어떤 분야에 탁월해지는 것보다는, ‘나답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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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기보다, 침묵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데에 더 관심이 있다. 작고 여린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을 소개할 일이 있을 때 민수 님은 이렇게 말한다고 해요. 민수 님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민수 님 다운 소개말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으레 ‘직업’을 통해 자신을 소개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민수 님과의 대화를 통해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중요한 건,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꾸려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다운 것’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 내가 하는 일에도 나만의 고유한 색깔이 담기게 되니까요.
일상의 억압에서 해방된 딱 하루, 비에 쫄딱 젖은 관객들이 예고도 없이 서로 손을 잡고 춤추었던 2022년 서울퀴어퍼레이드의 한 장면은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의 ‘나다움’이 발화되었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리고 여러분의 ‘나다움’은 어떠한 형태로 발화되나요?
2025년 새해에는 구독자 여러분의 고유한 ‘나다움’이 모두 찬란히 빛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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