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축제의 모습은 다 다를 거예요.
누구는 맑고 청량한 계절, 음악과 함께 몸을 흔드는 페스티벌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의 시간을 떠올리겠죠.
또, 함께 한 공간에서 울고 웃으면서 공동의 목적으로 연대하고 하나 된다면 그게 바로 축제 그 자체이기도 해요.
축제는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서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표명하는 수단이 됩니다. 어떤 축제는 내 얼굴이기도 하죠.
오늘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모습의 축제에 대해 살펴보려고 해요. 오늘의 레터는 멜로망스의 <축제>를 BGM으로 들으면서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By. Editor S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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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프리즘
🔴YES, QUEER!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입니다 🟡집회, 축제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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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기획자로서 ‘어떤 축제가 더 필요한가, 어떤 축제가 멋있고 의미 있는 거지?’라고 고민해 보았을 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가장 멋지고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레터에서 축제 대장 김민수 님은 서울퀴어퍼레이드(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가장 멋진 축제라고 얘기했어요. 참여하는 것만으로 내 정체성을 표명하고, 연대 의사를 내비칠 수 있는 축제! 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축제이기도 하죠.
어떤 행동이나 지지에 동참하고 싶을 때, 비교적 쉽게 그 방법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축제는 사회의 모두가 소외되지 않고, '함께' 한데 뭉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요.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고 있는 퍼레이드 형식의 성소수자 축제예요. 성소수자들의 명절이라 불리는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뿐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앨라이들에게도 자신의 프라이드를 내비치고 차별 없는 평등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요한 날인데요!
* 앨라이(Ally) : Ally는 '동맹, 협력자' 등을 뜻하는 단어로, '동맹을 맺다, 연대를 맺다'는 뜻이 있어요. 본인은 성소수자가 아니지만,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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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퀴어문화축제도 기본적으로 '축제'입니다. 구글, 이케아 같은 다국적 기업과 미국, 프랑스, 영국 등 대사관에서 운영하는 부스를 구경하고 굿즈를 구매하며 즐기면 돼요.
여타 페스티벌처럼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열어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죠. 작년에 열린 2024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부스를 열고, 스님이 직접 참가자들에게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갯빛의 팔찌를 걸어주기도 했어요.
'퀴어(queer)'는 현재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지만, 본래 '낯선, 이상한, 드문'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드물거나 낯선' 소수자들이 비단 성소수자뿐만은 아니겠지요.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의 축제이지만, 노동 해방과 장애인 차별 철폐를 외치는 단체들도 자리해 목소리를 높이고, 팔레스타인 학살을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든 시민이 행진에 함께하기도 했어요.
축제는 이렇게 가볍고 즐거운 방식으로 각자의 프라이드를 당당히 드러내는 손쉬운 수단입니다.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예정인데요. 뜨거운 날씨보다 더 뜨거운 연대의 마음으로 즐기는 축제가 궁금하다면, 2025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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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기쁘고 즐거운 일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 생각되지만, 슬픔을 승화하기 위해 부러 흥겨운 분위기로 치르는 축제 아닌 축제도 있습니다. 바로 '장례'인데요.
가나의 '관짝춤'을 아시나요? 몇 해 전 인터넷 밈으로 화제가 됐었던 가나의 장례 문화입니다. 고인을 슬픔보다는 기쁨으로 보내주고, 반드시 천국에 갔을 거라 믿으며 망자로서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관을 들고 춤을 추는 독특한 문화가 신선한 충격을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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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장례를 축제와 같이 밝은 분위기로 진행하는 문화는 세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방송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3>에서는 기안84가 마다가스카르 장례 문화인 '파마디하나'를 체험하는 장면이 담겼어요. 유족들이 모여 나팔을 불면서 고인의 사진을 들고 춤을 추는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생일잔치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떠들썩하고 흥겹습니다.
한국의 장례 문화에서도 집안 어른들이 장례식장 한구석에서 고스톱을 치며 왁자지껄 떠드는 문화가 오히려 고인과 유족들을 위로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여겨지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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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축제>(임권택, 1996)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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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한 이청준의 책 <축제>는 치매를 앓던 노모가 돌아가시고, 가족이 모여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생긴 갈등과 치유의 과정을 그렸어요. 상가(喪家)의 풍경을 그린 이야기의 제목이 어째서 '축제'일까요?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이고,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존재까지 화합하게 된 장례의 시간을 '축제'로 표현했어요. 오랫동안 보고 지내지 못했던 지인들과 장례를 계기로 오랜만에 모여 회포를 풀고, 다시 인연을 이어가는 화합의 장은 일견 축제를 닮았죠.
고인의 왔던 곳으로 '돌아감'을 축하하고 축복하는 의미라면, 장례 또한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축제의 순간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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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마지막 달은 우리 국민들에게 유독 가혹하고, 참담한 시간이었어요.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별안간 선포한 비상계엄으로 일상이 무너지는 공포와 불안을 견뎌내야 했죠.
비상계엄은 하루 뒤 새벽에 바로 해제되었지만, 당연하게도 우리들의 분노는 해소되지 않았어요. 광화문이 아닌 국회 앞으로,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집회에 분노한 시민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죠.
그런데 이번 집회는 뭔가 달랐어요.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고, 민중가요 대신 K팝이 울려 퍼진 건데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에스파의 '위플래시'에 맞춰 시민들은 최애의 응원봉을 흔들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어요. 마치 락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의 무대 앞에 서서 축제를 즐기는 모습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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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하고 진중한 분위기일 거라 예상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참석한 시민들은 익숙하게 울려 퍼지는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함께 축제, 아니 집회를 즐겼어요. 하지만 구호를 외칠 때만큼은 절실했죠.
'락페와 집회의 공통점'으로 1만이 넘게 리트윗된 X 게시글만 봐도 젊은 세대들이 집회를 대하는 자세를 알 수 있어요. 결코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민주 시민으로서 요구하는 바를 즐겁게 외치고, 결국 탄핵안 가결까지 이끌어낸 우리 국민들. 진정 '축제의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별게 축제인가요?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같은 것을 바라며 함께 즐거울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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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레터는 축제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낯선 것이 아니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연대와 화합의 순간들에 녹아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어떤 형태의 축제이든 축제의 목적은 동일한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요.
기쁨과, 심지어는 슬픔조차도 낙관으로 닦아내는 축제와 같은 마음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과정들을 잘 겪어내시길 바랍니다☺️
멜로망스의 <축제>로 열었던 레터를 2024 탄핵 플레이리스트로 닫고자 합니다🎧
오늘부터 시작될 긴 명절 연휴에는 마음도, 몸도 편안히 쉬시길 바라요.
구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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