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이나 영화를 너무 재밌게 봤을 때, 내가 느낀 감상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열망과 설렘, 흥분의 감정을 느껴봤을 거예요.
이때의 나는 그 작품을 너무 사랑하는 열성팬이 되죠. 하지만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에 대한 비판도 가감 없이 건네기도 해요.
오늘 레터에서는 이런 적극적인 작품의 소화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문학평론가 전승민 님과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문학 평론'이란 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전승민 님은 그저 "문학 평론이란, 작품을 정말 사랑하는 일"이라 말해요. 사람과 세상,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활자화된 삶의 응집물인 책에 대한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여성, 퀴어, 그리고 평론가.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자신을 '사랑에 미친 자'라고 소개하는 전승민 님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지, 비평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By. Editor S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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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대장' 전승민 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문학 현장 비평을 하고 있는 30대 중반 여성 평론가입니다. 대학에서 영문학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도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시바견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1인 가구이기도 하고, 경상도에서 상경해 지방인으로서의 서러움을 극복하며 서울에서 15년째 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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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다양한 형태 중, 왜 '평론'이었나요? 문학 비평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살면서 한 번도 시나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그냥 읽는 게 너무 좋은 사람인 거예요. 독자의 자리를 제일 편안해하는 사람인데, 동시에 나의 읽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그리고 나누고 싶다는 마음 이전에, 내가 책을 읽고 느끼는 생각을 한 편의 글로 남겨보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어려운 욕망이 있었고, 그런 욕망을 좇다 보니 비평이 제 앞에 나타났던 것 같아요.
등단하고 나서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니 원래 작가가 하고 싶었고, 실제로 시나 소설을 쓰다가 평론가로 등단한 분들이 꽤 많았는데 저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는 않았어요. 저는 창작보다는 읽는 작업을 정말 좋아합니다.
영문학을 전공하셨는데 한국 문학 비평을 주력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한국에서 등단한 평론가에게 주어지는 발표 지면은 그 사람의 능력이나 관심사와는 무관하게 한국 문학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어요. 대학원에서 발표하는 논문의 주기는 무척 길기 때문에 영문학 비평은 많이 생산할 수 없는 반면, 출판 현장에서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비평들이 작성되고, 유통돼요. 저도 그 속도를 따라가려 하다 보니 발표하는 한국 문학 비평의 수가 많아졌고, 그러면서 영문학 전공이지만 한국 문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거죠.
만약 저에게 영문학이나 다른 해외 문학에 대해서도 비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너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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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옥상정원의 평론가들' <위대한 개츠비> 편(좌 전승민, 우 심진경 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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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문학과 한국문학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한국 문학과 영미 문학의 경향은 많이 다르다고 느껴요. 한국 문학은 '서정'이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즉, 한 사람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걸 굉장히 중시해요. 반면 영미 문학은 아무래도 서구권이다 보니 개인주의 성향이나 개방성이 강해서 서사들이 내면으로 파고드는 게 아니라 매우 흥미롭게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경향이 있어요.
또, 이건 우리가 자부심을 느낄 만한 점인데요. 저는 한국 시가 정말 강세라고 생각해요. 영미권에는 시 독자가 거의 없고, 문학이라고 했을 때 소설과 등치가 되거든요. 우리나라는 시 독자가 꽤 많고, 그들이 무척 진지한 독자들이죠. 이런 차이점들을 동시에 보는 재미가 있어요.
서로 다른 것들 속에서 우리가 가진 고유한 것들이 더 도드라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요즘은 세계가 거의 동시간대로 연결이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한국 소설도 영미 소설처럼 변하고 있는 걸 보기도 해요. 밖으로 열리는 서사라든지, 좀 더 장르적인 쪽으로 흥미 유발을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점이 그래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해외에서 한국 문학의 강점을 한 사람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경향성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도, 한강의 시선이 인물의 내면으로 무척 깊게 파고드는 편인데, 외국 소설에는 그 정도의 집요함이 잘 없거든요. 이런 점들이 해외에서 볼 때 굉장히 신선하게 와닿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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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 님의 첫 평론집 <퀴어 (포)에티카> / 출처 : 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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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에 있어 퀴어와 페미니즘, 젠더에 특히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대학에서 문학을 배울 때 정말 중요하게 배웠던 관점, 즉 학풍이 페미니즘이기도 했고 그뿐 아니라 제 삶에 굉장히 큰 관심사이기도 했어요. 페미니즘을 만나고 나서 제가 삶을 보는 시선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고, 해방감을 느꼈어요. 또 퀴어가 페미니즘을 만났을 때 어떤 갈등이 생기는지와 같은 관점도 정말 흥미로웠고요.
그런데 저는 이런 것들이 단지 어떤 학문의 이론에 그치거나, 심지어 이데올로기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잘 살펴보면 페미니즘이나 퀴어는 다 사랑과 연관이 되거든요. 예를 들어 성소수자의 정체성은 누가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느냐에 따라 매우 중요한 것들이 결정되고, 페미니즘의 경우도 이성애의 자장 안에서 여성과 남성이 어떻게 사랑하고 함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거든요. 인생에 있어 사랑을 무척 중시하는 사람이라 저에게는 페미니즘과 퀴어를 파고드는 게 꽤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사실은 저는 페미니즘, 퀴어보다도 더 크게 관심 있는 건 '사랑' 자체이고, 그리고 시적인 것과 소설적인 것이 어떻게 엮이는지에 대해 흥미가 있어요. 이건 결국 나아가서 언어에 대한 문제거든요. 시의 언어와 소설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도 많은 평론 작업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최근 발표한 평론집 제목도 <퀴어 (포)에티카>이다 보니 독자분들이 그런 쪽으로 많이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요. 이런 관심과 흥미 모두 감사하고요, 문학이 퀴어 담론의 최전선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무척 기쁘고, 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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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로서 가장 기쁠 때, 그리고 가장 괴로울 때는 언제인가요?
평론가로서 기쁠 때는 명확해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말 좋은 작품을 발굴해 낼 때 기쁘고요, 그걸 알릴 수 있는 발표 지면이 있을 때는 더 좋고, 결국 그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때 정말 뿌듯해요. 또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인데 낯선 시선으로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을 때도 기뻐요. 문학 작품이 갖는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비평은 작품의 의미를 고정하는 게 아니라 계속 새로고침하는 작업이거든요. 그게 길게 가면 문학사가 되는데, 문학사를 만들어가는 작업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뿌듯하고 기뻐요.
반면에 평론가의 가장 큰 괴로움은 생활고입니다. 글쓰기만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건 모든 작가의 꿈일 거예요. 그 꿈은 아주 소수의 몇몇 작가들에 한해서만 이뤄지고, 나머지는 거의 빚을 내가면서 글을 쓰고 있는 현실이에요. 고료가 20년 전과 똑같거든요. 이런 문제의식이 있지만 문학장의 불합리한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답이 안 보일 때 정말 착잡해요. 제 뒤에도 쓰는 사람들이 생길 텐데 그들도 똑같은 구조를 겪을 테니까요. 하지만 개선 방법을 전혀 모르겠을 뿐더러, 다들 살기에 너무 바빠 이런 문제를 함께 논의하기 어렵다는 점이 제일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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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우) 시집 북토크를 진행하는 전승민 님 / 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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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에세이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에 등단 후 1년 만에 우울증을 겪으셨다고 적으셨는데요, 사랑해 마지않는 일임에도 어쩔 수 없이 현실에 붙잡히는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고 계시나요?
등단 후의 우울증을 가장 크게 해결해 줬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예요. 제가 글 자체에서 괴로웠던 건 아니었거든요. 글을 쓸 기회가 어떻게 주어지는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동료보다 경쟁자로 여기기도 한다는 시선을 강하게 느낄 때 우리는 우정의 관계를 어떻게 도모할 수 있는가, 이런 점들이 훨씬 어려웠고 그럴 때 저는 글쓰기로 숨었어요. 제 글과 독자들을 믿고, 독자들에게 어떤 좋은 것들을 드릴지 하는 고민으로 돌린 게 우울증 극복에 큰 힘이 됐어요.
또 하나 정말 중요한 게, 사생활의 확보였어요. 업무의 노동 강도가 치열할수록 '일하는 나'가 아닌 바깥에서 '가족이나 애인, 강아지와 함께 있는 나'의 시간이 점점 줄어요. 다른 관계들과 함께하는 나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나는 노동만 하는 사람인가?'하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런 생각이 심해질 때면 과감하게 사생활을 챙겨야 하는 것 같아요. 저의 일터와 아무 관련이 없는 가족들과 함께하다 보면 '여기 이런 세계가 따로 있었지, 다른 중요한 것들이 더 많았지'라는 걸 느끼면서 힘이 많이 생기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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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을 목적으로 하는 독서와 독자로서 하는 독서는 무엇이 다른가요?
많이 다르다고 느끼는데, 비평을 목적으로 하는 독서는 분석을 전제하기 때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하게 돼요. 근데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읽고 싶어서 읽을 때는 마음대로 느끼면서 내 멋대로 감상하면 되니까 독서에 힘이 빠져요.
둘은 너무 다른데, 사실 좋은 독서는 이 두 개가 붙어야 하거든요. 좋은 독서는 처음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감상에서 출발했다가, 좀 중요한 부분을 읽으면 분석 모드로 날카롭게 바뀌는 거죠. 감상을 할 수 없는 책은 결코 깊이 못 읽는 것 같아요. 아무리 냉정하게 분석해도 결국은 자유로운 시선에서 넉넉하게 읽을 수 있어야 많은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책을 소개해 주세요.
김연수, 한강 작가님이 제가 한국 문학에 빠지게 한 계기였다면, 영문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였어요. 또 저는 여성 철학자 시몬 베유를 정말 좋아해요. <중력과 은총>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작가인데요, 이 책은 성경처럼 언제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요. 삶에 대해 냉철하고 냉소적일 때도 있지만 결국은 급진적인 사랑으로 밀고 가는 책이에요.
반갑게도 최근에 새롭게 또 꽂힌 작가가 있는데요,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작가예요.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 평전, 에라스무스 평전 등 평전을 굉장히 많이 썼어요. 평전을 많이 썼다는 건 인간에 대한 관심이 정말 큰 사람이라는 방증이거든요. 요즘 시국에 필요한 작가이고, 그의 책이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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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독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감상에서 출발했다가, 중요한 부분을 읽으면 분석 모드로 날카롭게 바뀌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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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비평', '좋은 평론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비평이 작품을 정말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약간 오해가 생길 수 있어요. 작품을 사랑한다는 건 마냥 좋아하는 게 아니고, 냉정하게 비판해야 하는 지점을 놓치지 않고 비판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비평의 사랑은 정의로움과 굉장히 큰 관련이 있어요. 즉, 한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연, 지연, 인맥 등이 작품의 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걸 가장 정직하게 읽어주는 게 비평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랑인 것 같아요.
동시에, 너무 많은 미사여구를 넣어서 과하게 상찬하는 글은 비평적인 글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또는 평론가 중에 대학원 연구자인 경우가 많은데, 간혹 어떤 학문 이론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작품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이런 건 좋은 비평이 아니고, 작품을 맨 앞에 두는 게 제일 좋은 비평이라고 생각해요. 쉽지는 않지만, 결국 '양심을 지키는 평론가'가 좋은 평론가라고 봅니다.
평론집의 서문에서 "우리의 수치가 곧 우리의 자랑이다"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승민 님의 가장 귀한 수치는 무엇인가요?
어떤 것이 나의 수치인 이유는 그것에 대해 너무 진심이어서 그럴 때가 많아요. 결국 그 '너무 진심인 것'은 바로 '나 자신'일 거예요. 그래서 나의 수치가 나다운 것, 또는 나의 자부심, 나의 자랑까지도 될 수 있는 거죠. 너무 진심이라는 건, 내가 그걸 너무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니까요.
퀴어로서, 여성으로서, 또는 한국인으로서 많은 정체성이 우리의 프라이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주눅 들게 하는 요인이기도 해요. 누구나 주류는 아니잖아요. 우리는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든 한 번은 꼭 소수자가 돼요. 그럼 이런 수치를 어떻게 다루며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면 결국은 그걸 사랑한다는 걸 인정하고, 내 자랑과 자부심으로 떳떳하게 여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가장 귀한 수치는 여성 퀴어라는 정체성, 그리고 비평을 한다는 것이에요. 사실 비평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어요. 작품은 독자가 읽기 나름이어서 평론가가 뭐라고 한들 '몰라, 난 신경 안 쓸래' 하면 그만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정말로 수치스러운 일이 생기기도 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비평을 너무 사랑하고, 제가 독자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것들이 무척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 자신이 비평을 쓰는 사람이라는 게 제가 지닌 가장 귀한 수치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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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도 너무 진심이어서 들키고 싶지 않은 나만의 수치가 있나요? 좋아하지만 평가가 부끄러워 내놓지 못하는 작업물들, 아무도 몰래 내 맘속에서만 벌어지는 치열한 생각과 고민이 만드는 정체성 같은 것이요.
어쩌면 MBTI보다도 나를 더 잘 드러내고, 설명할 수 있는 건 내가 지닌 수치의 목록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살면서 갖는 괴로움의 많은 부분들은 이러한 수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순간 깨끗하게 해소될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 수치는 <더 포지>에서 이야기하는 대장력과도 맞닿아 있어요. 모두가 나의 수치를 나의 대장력으로 키워내고, 사랑하며, 자랑할 수 있는 떳떳하고 당당한 '나'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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