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다양한 독서 생활을 합니다.
끝을 향해 빠르게 치고 나가는 독자도 있고, 문장과 행간을 넉넉히 음미하는 독자도 있겠죠. 누군가는 종이책의 질감을 사랑하는 반면, 누군가는 전자기기로 가볍게 즐기기도 할 거예요. 때에 따라서는 책에 필기를 하거나, 혹은 필사를 하는 적극적인 독자도 있겠지요.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독자가 있다면, 완독하기 전까지는 다른 책을 집어 들지 않는 독자도 있겠고요.
그러면 문학 평론가는 어떻게 책을 읽을까요?
지난 레터의 전승민 평론 대장은 "좋은 독서는 처음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감상에서 출발했다가, 중요한 부분을 읽으면 분석 모드로 날카롭게 바뀌는 것"이라고 했죠. 문학 평론가를 꿈꾸지 않더라도, 평론가의 독서를 따라가다 보면 좋은 독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싹트는 대화였어요. 왠지 평론가에게는 좋은 독서의 묘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일반 독자로서의 구름 같은 기대도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이번 레터에서는 '좋은 독서'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비평가의 책 읽기>라는 도서를 리뷰해보고자 합니다. 일본 근대 문학 비평의 거장이라 불리는 문학 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가 생전에 남겼던 에세이, 강연, 대담 등을 모아 그의 독서론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엮은 책이에요. 평론 대장의 독서법이 궁금하다면, 이번 레터에서 힌트를 얻기를 소망합니다!
By. Editor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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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책 읽기> 리뷰에 앞서 저자를 먼저 소개할게요. 고바야시 히데오(1902~1983)는 20세기에 활동했던 일본의 저명한 평론 대장입니다. 근대 일본 문학의 흐름을 정리하고 방향을 제시한 비평가이자 사상가로, 문학 작품과 사유를 긴밀히 연결하는 독창적인 글쓰기로 명성을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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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책 읽기>는 제목 그대로 비평가로서의 독서법을 탐구하는 책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독서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지만, 고바야시 히데오는 천천히, 깊이, 그리고 진지하게 읽는 행위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비평이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작가의 정신과 교감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되기도 해요.
고바야시 히데오가 제시하는 독서 가이드는 무엇일지, <비평가의 책 읽기>에 서술된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해 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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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들판을 걷다가 예쁜 꽃이 한 송이 피어 있는 걸 봤다고 합시다. 가만히 보니 제비꽃입니다. "뭐야, 제비꽃이네"라고 판단한 순간 여러분은 더 이상 꽃의 모양도 색도 보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중략) 제비꽃이라고 파악했다는 것은 꽃의 자태나 색의 아름다운 느낌을 말로 치환해 버렸다는 말입니다. 말의 방해를 받지 않고 꽃의 아름다운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며 묵묵히 꽃을 바라보면, 꽃은 여러분에게 일찍이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그야말로 한없이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75p, 미를 추구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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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독서론 중 가장 첫 번째 순서로 소개해 드리고 싶은 것은 '미를 추구하는 마음'이라는 소제목으로 구성된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문학의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음악과 미술,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까지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이야기죠.
<비평가의 책 읽기>라는 책에서 미를 추구하는 마음을 언급한 것은, 아마도 문학을 진지하게 감상하기에 앞서 먼저 미를 추구하는 마음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거예요. 저자는 미를 추구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이 능력은 가꾸지 않으면 이내 쇠퇴해 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키우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게도 그저 '보고 또 보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보통 사과와 의자를 볼 때, 단순히 사과=먹는 것, 의자=앉는 것으로만 봅니다. 사과의 색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매일 앉는 의자가 어떤 형태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거죠. 위에 인용한 제비꽃의 일화도 마찬가지예요. 대상을 단어에 가두지 않고, 애정의 눈으로 보고 또 보는 것이 대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시가 여러분에게 뭔가를 하라고 명령하던가요? 내 기분이 이해됐냐고 묻던가요? 여러분은 시를 접하며 뭔가를 하지도 않고, 뭔가를 이해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아름답다고 느낄 뿐입니다. 무엇을 위해 느끼는가? 무엇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냥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79p, 미를 추구하는 마음
저자는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문학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명령하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단어와 문장, 그리고 행간을 천천히 보고 또 보며, 미를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저자는 이러한 마음가짐이 기반이 되었을 때 진지한 독서의 첫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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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특이한 독서법을 실행했다. 등하굣길에 읽는 책, 전차 안에서 읽는 책, 교실에서 몰래 읽는 책, 집에서 읽는 책, 이런 식으로 구별을 두고, 늘 몇 가지 책을 병행하여 읽을 수 있도록 안배했다. 실로 터무니없다고 할 만한 행동이었지만, 그 당시의 도를 넘는 왕성한 지식욕과 호기심은, 느긋하게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다른 책을 펼쳐볼 여유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9p, 독서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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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무언가에 대한 왕성한 탐구욕으로 도를 넘는 일을 손에 잡히는 대로 소화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자는 지적 호기심이 가득했던 고등학생 시절,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남독(濫讀)'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 경험은 본인이 비평가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경험이 '비평가가 되려면 남독하라'든가, '비평가의 독서법은 남독'이라는 조언은 아닐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문학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던 경험이 남독으로 표현된 것이겠지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무언가에 갈급함을 느끼고 몰입해 본 경험은 매우 귀하고 소중하다고 여겨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독서법 두 번째는, 독서에 끝없이 빠져들어 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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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감상한다는 게 왠지 뜬구름 잡는 것 같아 불안해지니 뭔가 이렇다 할 의견을 원하게 되는데, 그럴 때야말로 가장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의견을 정해놓고 감상하는 사람치고, 자기 의견에 속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설프게 가진 의견 때문에 폭넓게 음미하는 마음이 스러져버리는 것입니다. 그 의견에 준해서 모든 걸 감상하려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자기 의견의 범주 안에서밖에 감상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저런 것들이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고 자기 틀 안에 갇혀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감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중략) 비평해야 된다, 비평해야 된다 하며 자기 마음을 옭아매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의견도 갖지 않고 무엇이든 순수하게 음미하고자 유념하며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수행은 비평보다 훨씬 어려운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36p, 문학 감상의 자세와 방법
문장을 감상한다는 것은 창조하는 일도 비평하는 일도 아닙니다. 문장을 써서 독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받은 인상을 어떤 식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문장 감상이란 문장이 주는 인상을 충분히 음미하고 즐기는 일입니다.
33p, 문학 감상의 자세와 방법
종종 비평과 해석이 문학을 순수하게 감상하는 것보다 더 고차원적인 행위라고 여겨지곤 해요. 하지만 저자는 어설프게 갖는 의견이 오히려 문장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고, 그보다는 문장을 음미하려는 수행이 더욱 중요하다고 합니다.
평론 대장 전승민 님과의 대화 중, "감상을 할 수 없는 책은 결코 깊이 못 읽는 것 같아요. 아무리 냉정하게 분석해도 결국은 자유로운 시선에서 넉넉하게 읽을 수 있어야 많은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에요."라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이었어요.
돌이켜보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무엇을 배웠는지 셈하게 되는 책보다는 '재밌었다!'라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감상에 젖게 되는 책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것 같아요. 그렇게 순수하게 음미한 문학은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문장들을 되새기거나 필사를 하게 되기도 하죠.
저자가 강조하는 것 또한 해석하거나 비평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천천히, 깊이, 진지하게 문장을 음미하는 것이 '제대로 독서하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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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레터에서 여러분의 독서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열쇠를 찾았나요?
<비평가의 책 읽기>의 첫 페이지를 펼칠 때는 평론가라면 좋은 독서의 묘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요. 하지만 책을 덮고 보니, 저자가 의도적으로 독서에 대한 뾰족한 가이드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속에 몰입하고, 문장을 음미하고, 그곳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은 독서의 '방법론'은 아니니까요. 그저 더 즐거운 독서 생활을 하기 위해 지니면 좋을 마음가짐으로 와닿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문장을 음미하는 데는 법칙도 없고, 전문성도 없으니까요. 즐기면 그만이죠!
하지만 비단 독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추구하고, 몰입하는 일이 있다면, 본문에 '독서' 대신 그 일을 넣어보세요.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모쪼록 아직 코끝이 차가운 이 계절, 따뜻한 이불 속에서 독서를 즐기는 구독자님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순간입니다.
독자님들의 즐거운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오늘의 프리즘 레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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