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매일 오르는 그릇과 컵, 식물의 작은 집이 되어주는 화분, 바닥과 벽을 빈틈없이 메우는 타일까지.
오늘의 주제는 우리 삶에 가장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도자기'예요. 말랑말랑한 흙을 빚어 높은 온도에 구워내면 우리가 사용하는 단단한 도자기가 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에요. 흙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뒤틀리기도 하고, 조각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기도 하고, 가마의 높은 온도를 견디다 속절없이 깨지기도 하죠.
이번 레터에서는 그 모든 확률을 이겨내고 세상에 하나뿐인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 대장 노솔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망원동 골목길에 위치한 공방 <스튜디오 더 피날레>의 주인이기도 하죠. 큰 창문으로 날씨가 쏟아져 들어오는 이 공방은 물레를 배우는 수련생들의 교실이 되기도 하고, 도자기와 유약을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실험실이 되기도 하고, 고운 선으로 조각된 백자들이 단단하게 구워지는 작업실이 되기도 해요.
그리고 노솔 님은 '여정'이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작업을 해오고 있어요. 노솔 님은 어떠한 여정으로 도자기를 빚고 수련생들을 마주하는지 그 여정에 담긴 철학과 의미를 소개하겠습니다.
By. Editor Sk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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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 대장' 노솔 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도예, 그리고 더 나아가 공예를 조금 더 진실되게 알리고 싶은 작업자 중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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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희 아버지도 도예가이신데요, 사실 어릴 때는 도예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어릴 적에 살던 집에는 작업실이 바로 붙어 있었는데, 그래서 집에서 항상 흙냄새가 났어요. 흙이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전혀 감흥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미술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예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결정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보다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익숙한 것이 불쑥 튀어나왔던 것 같아요.
오래 도예가로서 작업해 오신 아버지에게 영감을 받는 부분도 있으실 것 같아요.
글쎄요.(웃음) 보통 도예 가문이 계승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는 부모님께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애초에 도예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럴 만한 기회가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지께서 문득문득 하셨던 작업에 대한 말씀들이 '지나고 보니 맞았네'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어릴 땐 반항심 때문에 아버지 말씀이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아버지 덕분에 제가 도예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덜 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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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스튜디오 더 피날레>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노솔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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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작업이나 클래스, 프로젝트 등 노솔 님이 하고 계신 일들을 소개해 주세요.
우선 현재는 교육을 가장 우선시하고 있어서 개인 작업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아요.
클래스의 경우 <물레 정규 수련>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보통 도예 수업은 '수강'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저는 조금 더 '수련'에 걸맞은 느낌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도자 이론에 관한 수업인 <도자학개론>도 확장할 계획이 있는데, 더 완벽을 기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늦어지고 있네요.
또 <스페셜티 글레이즈>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유약*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프로젝트예요. 현재는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지만 공유할 수 있는 매체를 더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유약: 도자기 제조 과정에서 광택, 색 및 질감 개선을 위해 표면에 바르는 물질
<스페셜티 글레이즈> 프로젝트가 흥미로워요. 열심히 연구하여 알아낸 유약 레시피를 혼자만의 노하우로 활용할 수도 있는데, 모든 작업자와 공유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이렇게 모두와 공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실 제가 공유하는 것들은 저의 노하우라기 보다는 우리 조상들이 알아낸 것들을 제가 찾아내고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지식의 공유가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도예 분야에서는 비법을 공유하는 데 인색한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공예 분야의 수준이 더 높아지기 위해서는 각자가 가진 것들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이건 제가 개인 작업보다는 교육에 치중하는 작업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몰라요. 만약 제가 이 유약으로 먹고산다고 하면 쉽게 공유하기는 어렵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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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솔 님은 '여정'이라는 이름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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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작업을 '여정'이라고 표현하시는데, 여정이라는 이름으로 작업을 하게 된 이유와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는 기물 표면에 선을 조각하는 작업을 많이 하는데요, 아무리 능숙하다 할지라도 선은 삐뚤빼뚤할 수밖에 없어요. 선마다의 간격이 모두 일정하기도 어렵고요. 매번 같은 칼을 쓰고 같은 마음가짐으로 조각한다고 하더라도 흙의 건조 상태에 따라 뜯기는 느낌, 찢기는 느낌으로 조각될 때도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흙에 수분을 더 준다든가, 더 건조한다거나 하진 않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하려고 해요. 크게 보면 다 비슷하거든요.
저는 이런 부분이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불완전한 선들이 모이지만, 멀리서 보면 괜찮아 보여요.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수직도 안 맞고, 찢어져 있고, 삐뚤빼뚤하더라도요. 우리가 살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고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지 않은지 고민되는 순간들도 있지만, 그 하나하나에 집착하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잖아요. 실수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흙이 계속 마르는데 흙은 마르면 깨지거나 뒤틀려요. 그 잘못 그은 선 하나 때문에 내 스텝이 꼬일 순 없잖아요. 그냥 지나가도 괜찮아요.
저의 작업이 삶의 여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하는 모든 작업을 '여정'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아마 제가 앞으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여정이라는 이름은 계속 쓸 것 같아요.
도예는 재능의 영역과 훈련의 영역 중 어떤 것에 더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요. 도예는 훈련의 영역이에요.
예전에 헬스를 좋아했었는데, 보디빌더 한 분께서 축구나 체조 같은 스포츠는 재능이 있어야 잘 할 수 있지만 헬스는 꾸준히 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무조건 달성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만큼 재능의 영역보다 훈련의 영역이 중요한 분야가 따로 있는데 그게 예술 쪽에서는 공예라고 생각해요. 공예는 제대로 된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작가들보다 잘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훈련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이상의 차이를 만드는 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끝까지 가 본 적이 있는지, 그리고 애초에 내가 그럴 의사가 있는지의 여부라고 생각해요. 기술이 좋은 작가는 많은데 그 기술로 좋은 작품을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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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더 피날레> 작업실 선반 위에 노솔 님의 작업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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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다른 수공예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물레로만 한정 지어본다면 물레는 감각으로 습득해야만 시작을 할 수 있어요. 다른 공예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죽 공예로 예시를 들어본다면 가죽에 대해 전혀 몰라도 도안대로 자르고, 펀칭을 할 수 있어요. 삐뚤빼뚤하고 안 예쁠 수는 있지만요. 하지만 물레는 시작 자체가 안 돼요. 스스로 체득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는 수강생들에게 '단서를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수강생들은 제가 주는 단서를 가지고 수련하면서 본인이 답을 찾아가야 하는 거죠.
도자기는 가마를 여는 순간까지 결과를 모른다는 말이 있을 만큼 변수가 많은 작업이기도 한데요. 우연으로 멋진 작업물이 나올 수도 있고, 혹은 계획한 대로 나오지 않아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연의 설렘, 그리고 그 우연을 통제해 내는 작가의 기술력 중 어느 쪽에 더 관심을 두고 계신가요?
우연을 기반으로 한 작업들도 있지만 그것도 작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발현하는 것이지, 우연만 생각하다 보면 개판이 돼요. (웃음)
저는 기술력으로 결과를 통제하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작업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장작으로 가마를 때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넓어졌어요. 90% 이상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도예의 불확실성 때문에 항상 불안함을 느껴요. 저는 언제나 작업에 최선을 다하니까, 대부분 결과물도 잘 나와요. 그럼에도 더 통제하고 싶은 건 아주 미세한 표현들인데 제 힘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그 10%를 알기에 언제나 불안한 것 같아요. 조금의 변수조차 자연의 일부로 남겨두는 게 아니라 통제 안에 들어오게 하려는 건 저의 욕심이겠죠.
반면에 통제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통제가 안 된 것들도 있어요. 필연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경우들이요. 더러 그런 부족함을 우연의 산물이라고 포장해서 판매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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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대규모로 생산되는 고품질의 도자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공예품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사람이 만든 도자기는 공장에서 만든 것보다 명백히 품질이 좋을 수가 없어요. 공장에서 만든 도자기엔 인력과 연구, 개발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어갔을 테니까요. 예전에는 사람만 할 수 있던 것들도 기계로 대체해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고요.
공산품과 수공예품의 차이는 생각의 주체에 있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공산품은 대중성이나 상품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의 주체가 타인에게 있어요. 하지만 수공예품은 작가가 생각의 주체로서 본인만의 개성을 담아내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다른 점이겠지요.
이것도 역시 '그럴 의지가 있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공장에서 도자기를 2천 원에 판매할 건데 조금 더 손 볼 의지가 있느냐, 라고 고민했을 때 단가를 고려하면 여기까지는 안 되겠다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거고요. 반대로 작가들의 경우 값을 더 받으면 받았지 내가 이것까지 하고야 말겠다, 라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죠. 결국 작업물의 아이덴티티가 공산품은 타인에게 있지만, 수공예품은 작가에게 있다는 점이 수공예의 가장 큰 의미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도예가, 혹은 더 나아가 공예가에게 필요한 대장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굳이, 그리고 기꺼이 조금 더 시간을 쏟고 손길을 한 번 더 얹을 수 있는가'가 공예가에게 필요한 대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이 작업할 때 일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작가 자신만 아는 부분들이 많아요.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사람들은 몰라, 이렇게 해도 살 사람들은 사'하는 마음가짐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기준이 낮거나 높거나 하는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작가 스스로가 정한 기준이 명확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조금 피곤하고 손해 보는 것 같더라도 본인만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작업할 수 있는 의지가 공예가에게 필요한 대장력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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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를 나눈 도예 대장 노솔 작가님은 타인의 시선에 맞춘 기준이 아닌, 오로지 내 시선에 부족함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의지가 공예가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했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도 사람들은 몰라"라는 마음가짐을 효율적인 일처리로 치환했던 과거의 순간들이 떠올랐어요. 물론 그중에는 타인의 시선이나 빠른 일처리를 우선시해야 하는 일들도 많았을 거예요. 그럴지라도 스스로의 기준을 분명히 가지고 한 번 더 시간을 들일 의지는 공예가를 넘어 모두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경험들은 앞으로의 모든 일에 완성도를 높이고 결국 자기 자신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일 테니까요.
<더 포지> 구독자 여러분도 스스로 오롯이 세운 기준이 빛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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