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카메라가 보급된 지 이제 반세기가 지났어요.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진’은 그야말로 기술의 혜택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온 것 같아요.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그러면서 사진의 장르도 다양해졌습니다. 풍경사진, 다큐멘터리 사진, 광고 사진, 패션 사진 등, 사진에 무엇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갈래가 나뉘고 뻗어나갔습니다. 지난 레터의 주인공인 사진 대장 이수민 님은 그 중에서도 ‘광고 사진’을 다루는 포토그래퍼였죠.
이수민 님과 대화하고 나서, 그 수많은 갈래를 거슬러 결국 ‘사진’이라는 본질 하나로 모이는 수많은 ‘사진 대장’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다른 분야의 사진작업을 하더라도 결국 하나의 ‘대장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사진기자 조인원이 쓴 인터뷰집, <창작의 순간>에는 다양한 장르의 사진 대장들과 나눈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사진 대장들이 말하는 ‘대장의 조건’은 무엇인지 함께 들여다봐요.
By. Editor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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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프리즘
🔴Who : ‘어떤 사람’이 사진가가 되는가?
🟠Why : 내가 ‘왜’ 사진을 찍냐면 🟡What : 어떤 피사체를 담아내는가 🟢How :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한 가지를 꾸준히 🔵When : 시간이 흐르면 기술도 변할테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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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발한 사진은 어떻게 찍었을까?’
일간지 사진기자로 오래 역임한 저자는 어느 날 민병헌 작가의 <잡초> 시리즈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민병헌 작가를 직접 찾아가서 어떻게 찍었는지를 물었다고 해요. 그 자리에서 민병헌 작가가 사진을 찍는 특별한 방식과 가치관을 듣게 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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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병헌 / 출처: Korean Artist Project(K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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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계기로 저자는 사진기자로서 몸 담던 뉴스 현장에서 벗어나서, 다른 분야의 사진가들을 만나보고 싶었다고 해요. 그리고 광고, 패션, 다큐멘터리, 풍경, 메이킹 포토 분야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21명의 사진작가들을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눈 내용을 엮은 <창작의 순간>을 출판했습니다.
이번 프리즘 레터에서는 <창작의 순간>에 담긴 스물 한 명의 ‘사진 대장’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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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 ‘어떤 사람’이 사진가가 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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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기 전에 시골에서 삼류 논두렁 깡패처럼 놀았다. 나이가 들다 보니 친구들은 진짜 어둠의 세계로 가더라. 나도 가만 있으면 그 길로 가겠더라. 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서 일단 가까운 일본을 놀러갔다. 그러다가 아예 학교를 다니자는 생각에 시부야에 있는 전문대 사진과를 등록했다. 그때까지도 특별히 사진을 배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사진 강의를 듣다 보니 너무 재밌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자는 생각에 2000년쯤 도쿄공예대학 예술학부 사진학과를 입학했다.
<창작의 순간> 74p, 양승우-다큐멘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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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란, 천부적으로 예술적 소양이 뛰어나거나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신의 계시를 받아 선택하는 직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작의 순간>에는 우연한 계기로 사진을 접하게 되고, 이후 꾸준히 작업을 해나가면서 ‘대장’이 된 사진가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양승우(다큐멘터리) 작가는 시골에서 깡패처럼 지내다가, 친구들이 진짜 어둠의 세계로 가는 것을 보고 무작정 일본으로 가 사진 학교에 등록했대요. 그렇게 우연히 사진을 사랑하게 된 양승우 작가는 접대부, 노숙자, 깡패 등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면을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되죠.
주명덕(다큐멘터리) 작가는 사진 동아리의 여학생과 친해지고 싶어서 사진을 시작했다고 해요. 김한용(광고) 작가는 일제 강점기 시절 공업학교 인쇄과에 재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영준(패션) 작가는 고등학교 때 만나던 연인이 사진을 권해서 시작했대요.
이렇게 ‘어쩌다’ 사진의 세계에 들어온 사진가들은, 이후 꾸준히 찍고 싶은 사진작업을 해오면서 본인만의 것을 찾아나갔어요. 이들에게 어떻게 사진이라는 우연이 필연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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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진을 좋아서 해야 한다. 나는 카메라가 좋았다.
<창작의 순간> 32p, 임병호-광고
나는 누구를 위해 찍는 사진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는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가 어떤 사진을 하고 싶은가를 항상 고민하는 것이다.
<창작의 순간> 19p, 민병헌-풍경
교수는 작가의 콜라주를 보면서 “좀 유치하네. 그런데 계속해봐. 유치해도 네가 하고 싶은 걸 계속해야 작가지”라며 격려했다. 인생에서 바닥을 치고 일어난 그때 그는 결심했다. 남들에게 멋있게 보이는 것, 잘 모르는 것들은 앞으로 절대 하지 않겠다고.
<창작의 순간> 176p, 원성원-파인아트 콜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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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레터에서 만났던 이수민 사진 대장도, “사진 대장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사진을 좋아해야 한다”고 말했죠. 사진이란 크리에이티브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들도 많은데, 그것은 ‘사진을 좋아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란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좋아하는 일’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하기 때문인데요. 모두 같은 길을 선택하는 것을 삶의 바이블로 여기는 사회에선 좋아하는 일을 찾기도, 나만의 길을 선택하는 용기도 갖기 어렵습니다.
어떤 일의 대장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걷는 지구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힘들고 지치는 순간에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는 힘. 그 힘의 비밀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선택한 길 위에서는 쉽게 지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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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본 후엔 자신을 쳐다보던 그 눈이 잊히지가 않았다. 계속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앞으로는 고래를 찍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후 31년간 고래를 찍었다.
<창작의 순간> 222p, 장남원-자연다큐멘터리
김선기는 치매환자인 할머니와 옆에서 돕는 어머니를 15년 동안 기록했다. 어느 오후 베란다에서 볕을 쬐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창작의 순간> 137p, 김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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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들이 피사체를 선택하게 되는 순간은 흡사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장남원(자연다큐멘터리) 작가는 수중 촬영 중 고래와 마주친 후 31년 간 고래만 찍으러 다닙니다. 김선기 작가는 할머니가 볕을 쬐고 있는 장면이 아름다워서 카메라를 들었고, 그 후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를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리고 박종우(다큐멘터리) 작가는 1987년에 친구들과 히말라야에 갔다가 소수민족을 마주치고는, 그들에게 애잔함을 느껴 20년 간 소수민족을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아냈다고 해요.
카메라를 들기 전에 사람들과 친해지려 한다. 아니 그들과 같이 노는 것이 좋다. 나 같은 경우에 아이들과 논다. 아이들과 놀다 보면 어른들과도 친해진다. 그러면 내가 카메라를 들어도 거의 반감은 갖지 않는다.
<창작의 순간> 64p, 박종우-다큐멘터리
카메라를 들기 전, 사진가들은 피사체와 마음을 나눕니다. 박종우 작가가 소수민족에게 먼저 다가가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양승우(다큐멘터리) 작가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기록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하고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양승우 작가는 “알지도 못하는 상대를 몰래 와서 툭툭 찍고 가는 것은 사진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좋은 사진이란, 사랑하는 피사체와 소통하려는 진심이 묻어나는 사진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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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한 가지를 꾸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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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를 하든지 자기만의 특화된 분야가 있어야 한다. 시류를 좇으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하는 식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장기적으로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편이 더 낫다.
<창작의 순간> 67p, 박종우-다큐멘터리
사진은 한 장만 갖고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꾸준히 정성을 다해서 하면 뭔가는 나오더라. 그래서 여러 장을 오래 찍어야 한다.
<창작의 순간> 203p, 윤정미-파인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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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눈치를 챈 독자도 있겠지만, 사진가들의 작업 기간은 굉장히 깁니다. 장남원 작가는 고래만 31년을 찍었고, 김선기 작가는 할머니만 15년을 찍었죠. 구바와라 시세이(다큐멘터리)라는 일본 출신의 작가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60년 동안 사진에 담았습니다. 윤정미(파인아트) 작가는 2004년, 딸의 사진을 찍어주다가 모든 물건이 ‘핑크색’인 것을 보고 <핑크 블루 프로젝트>를 시작해, 현재까지 연작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죠.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매 해 트렌드가 새롭게 변하고, 빠르게 시류를 타는 것이 성공의 조건이라 여겨지기도 하죠. 하지만 사진가들은 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것 한가지를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좋은 작업’의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꾸준히 정성을 다해서 하면, 반드시 무언가는 나온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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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 시간이 흐르면 기술도 변할테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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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면서 필름 시절 가졌던 노하우가 한 번에 디지털로 변했는데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드셨는지요?
- 이렇게 기능이 좋은 카메라가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중략) 디지털 카메라로 난 4시간 동안 4000장을 찍은 적도 있다. 필름 때라면 이게 가능하겠나? 아깝긴 뭐가 아까워, 오히려 이런 시대의 혜택까지 받게 된 걸 감사해야지.
<창작의 순간> 105p, 김한용-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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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용 / 출처: 아시아문화박물관 아카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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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부터 60년 이상 사진을 찍었던 광고사진계의 대부, 김한용(광고) 작가는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모두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전, 구순의 작가가 사진을 찍은 카메라는 삼성 갤럭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변화를 ‘혜택’이라고 했습니다.
김보성(패션) 작가는 최근 VR에 관심이 많다고 했습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내러티브를 제시할 수 있는 기회라고요. 이전호(영화 포스터) 작가는 초고화소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 캡쳐한 이미지를 사진으로 대신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카메라의 기술이 발전하고 변화한다고 해서 지레 멈춰섰다면 김한용 작가의 60년 업력은 없었을 거예요. 작가는 세상을 떠났지만 현재까지도 작품들로 남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지도 못했겠지요.
시간이 흐르면 기술은 변할테고 내가 가졌던 노하우가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저 꾸준히 작업을 이어나가는 것, 그러기 위해 새로운 문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 이것이 마지막 ‘대장의 조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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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는 데 몇 년이 걸리는 사진도 있고, 하루 이틀만에 찍는 사진도 있습니다. 혹은 비즈니스적으로 ‘잘 팔리는’ 사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진도 있겠죠. 사람들은 어쩌면 광고 사진보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더 귀한 사진으로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창작의 순간>에 담긴 스물 한 명의 사진 대장은, 각자의 분야 속에서 모두 대장이었습니다. 사진 한 장에 온 정성을 쏟는 그 마음, 피사체를 소중히 바라보는 시선, 어떤 것을 담고 싶다는 단단한 가치관. 결국 대장을 만드는 건, ‘진심’이라는 그 명쾌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진심은 무엇을 향해 있나요?
각자의 깊은 마음 속에 담긴 진심을 톺아보게 되는 레터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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