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프레임에 담아 본 적이 있나요?
하나 둘 셋, 찰칵! 짧은 찰나를 한 장의 사진에 담는 행위.
핸드폰 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이젠 누구나 핸드폰만 있으면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AI에게 '꽃을 든 아이의 사진을 만들어 줘'라고 하면, 그럴듯한 사진을 만들어주기도 해요.
하지만, 좋은 사진은 따로 있죠. 피사체를 아끼고 지켜본 꾸준한 시선과,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내겠다는 집요한 열정, 그리고 스스로 내가 하는 행위를 '프로'로 만드는 사진가의 단단한 가치관과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깃든 사진이야말로 '좋은 사진'이 아닐까요?
오늘은 집요함을 자신의 대장력으로 꼽는 사진 대장, 이수민 님을 만났어요.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시작해 자신만의 멋진 스튜디오를 여는 데 성공한 수민 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요.
By. Editor Sam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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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장' 이수민님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송파구에서 광고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이수민입니다. 대학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전공하고, 졸업 후 4년 정도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사진작가로 전향했어요.
5년간 인하우스 포토그래퍼로 일하다가, 최근에 회사를 그만두고 ' 스튜디오 홀리몰리'라는 1인 스튜디오를 오픈해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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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작업은 사진이나 영상이 없으면 결과물을 어딘가에 내놓을 수 없기 때문에, 포토·영상 감독과 항상 협업을 해야 해요. 저는 늘 협업을 해야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이 불편하기도 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진 한 장을 내가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카메라를 사서 무작정 사진을 찍으러 다녔어요. 그렇게 찍은 사진들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여러 회사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한 곳에 합격해서 그때부터 포토그래퍼로서 사진을 찍게 됐어요.
처음 사진작가를 시작할 때는 오롯이 혼자서 사진을 배우셨나요?
푸드스타일리스트 시절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했던 포토그래퍼 실장님께 기본적인 카메라 메커니즘은 배울 수 있었어요. 촬영 구도나 감각은 그냥 카메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스스로 터득했던 것 같아요.
사진작가로 입사한 이후로는 회사 선임께도 배우고,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에선 현업에서 일하고 계시는 포토그래퍼 실장님들의 강의를 듣는 등 계속 배우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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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부터 마케팅, 촬영과 편집까지 혼자 다 하는 사진 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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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로 전향한 지 5년 만에 개인 스튜디오를 차리셨어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독립할 수 있었나요?
솔직히 말하면, 이직을 하고 싶었는데 잘 안됐어요. 제가 가고 싶은 큰 기업들에선 사진 업무는 다 외주를 쓰고, 다니던 회사와 비슷한 수준의 회사로 이직하면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거 같고... 이 딜레마에 거의 1년 정도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회사에서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동료가 '수민 님은 세팅도 잘하고 사진도 너무 잘 찍으셔서 혼자 하시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개인적으로 외주 일을 하게 됐는데, 한 번 해보니까 '혼자 할 수 있겠는데?'하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은 질러보자. 사실 내가 포기 못하는 건 이 월급 하나뿐 아닌가. 월급만 포기하면 뭐든 시작할 수 있는데.. 하는 결심으로 회사를 나와 스튜디오를 열게 됐어요.
1인 스튜디오이기 때문에 촬영만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혼자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영업부터 마케팅, SNS 운영, 촬영 기획과 편집까지 다 제가 하고 있어요. 박람회가 열리면 참석해서 명함을 돌리고, 박람회에 참여한 회사 리스트를 찾아 포트폴리오와 함께 영업 메일을 보내요. '박람회에 참여한 기업에 한해 이 견적에 해드립니다'와 같이요. (웃음)
또 요즘엔 인스타그램을 통해 클라이언트 연락이 많이 와서,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운영하고 있어요. 이 외에도 네이버 블로그와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가끔 메타 광고를 돌리면서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광고주의 경우 브랜딩이 잘 안되어 있어서, 브랜드 촬영 콘셉트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런 경우에는 꼼꼼한 미팅을 통해 촬영 콘셉트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전부 진행해 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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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여줘야 클라이언트나 고객들을 시각적으로 확 끌어당길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고뇌하며 디테일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 재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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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회사에 다닐 때와 개인 사업을 하는 지금, 만족도는 어느 쪽이 더 높은가요?
지금이 훨씬 좋아요. 개인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은데요, 회사에서 한 달 일하고 받는 돈을 지금은 4~5일 일하면 벌 수 있으니까요. 촬영이 있는 날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어떨 땐 새벽 넘어서까지 일할 때가 많지만 촬영이 없는 날에는 여유롭게 보낼 수 있어서 사실 일하는 시간은 회사 다닐 때보다 적은 것 같아요.
반면, 아무래도 회사 다닐 때보다 불안감은 더 크죠. 저는 항상 불안해해요.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다가도, 또 금방 불안에 휩싸이기도 해요. 그럴 땐 오늘은 클라이언트들에게 영업 메일을 보내보자, 오늘은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몇 개 올려보자, 하는 식으로 뭔갈 계속하면서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 내려고 하는 편이에요.
제품 사진뿐 아니라 뷰티 촬영, 음식 촬영 등 다양하게 하시는데 가장 좋아하는 촬영과, 반대로 가장 어려운 촬영은 무엇인가요?
저는 제품 촬영, 특히 화장품 중 스킨케어류 제품을 찍는 걸 좋아해요. 제품 사진은 형태와 재질, 제형에 따라 미세하게 조명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의도한 대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예를 들어, 제품이 투명 용기여서 제품의 제형을 보여줘야 할 경우 어떻게 보여줘야 클라이언트나 고객들을 시각적으로 확 끌어당길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고뇌하며 디테일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 재밌어요.
가장 어려운 촬영은 인물 사진이에요. 제품은 가만히 있기 때문에 각도나 위치를 제가 통제할 수 있는데, 인물은 제 능력 밖의 변수가 너무 많고 통제가 안 돼서 어렵게 느껴져요. 또 인물 사진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보정을 할 때도 모델 본인, 클라이언트,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다 굉장히 달라요. 그래서 촬영 후에 추가로 의견 조율을 많이 해야 한다는 점도 어려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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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작업하신 촬영 중 제일 좋아하는 작업물은 무엇인가요?
제가 브랜드 회사에 다닐 때 작업했던 새치 염색약 촬영본인데요, 이 제품을 기획하신 분이 명확한 레퍼런스는 없이 새치가 염색이 되듯, 서서히 물드는 느낌의 연출을 원하셨어요.
그동안 해외 사진 계정들에서 레퍼런스로 봐 뒀던 수조에 물감이 퍼지는 연출이 새치염색약 콘셉트와 잘 맞을 것 같아서 제안했고, 컨펌이 되어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주사기에 물감을 풀어 수조에 물감을 퍼뜨려야 하는데, 물감 농도를 잘 맞춰야 서서히 퍼지는 느낌이 나서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수조 물을 다 버리고 다시 채워서 또 시도하고... 이런 과정이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힘들었던 만큼 촬영이 굉장히 잘 됐고, 보정도 생각보다 너무 잘 됐어요. 이 사진을 완성하고 나서 이제는 내가 머릿속으로 '이런 사진을 찍고 싶다'고 생각한 걸 실제로 구현해 낼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이 있구나, 하는 뿌듯함이 생겨서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 됐어요.
촬영 기획을 직접 하시다 보니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계속 샘솟아야 할 것 같아요. 제품 콘셉트를 기획할 때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저는 다른 스튜디오 사진이나 해외 사진 계정, 유명 매거진 화보를 레퍼런스로 많이 보는 편이에요. 샤넬 화보 같은 걸 보면 제품을 구두 위에 올려놓는다든지, 일상 속에 있는 것들을 활용해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사진을 많이 찍거든요.
이런 레퍼런스들을 보면서 저도 일상에서 경험하는 많은 것들을 촬영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새로운 곳에 가면 '나중에 여기서 이렇게 연출해서 찍으면 재밌겠다'는 식으로 틈틈이 아이디어를 계속 쌓아가고 있어요.
또 유명한 포토그래퍼들의 SNS를 팔로우하고 촬영 현장 사진을 올리면 캡처해 놓고, 계속 연구해요. 어떻게 촬영을 하는지 현장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결과물을 보고 빛을 어디에 쓴 걸까, 고민하는 게 일상이에요. 그리고 그분들이 직접 하는 강의나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러 가기도 해요. 선배들에게서 배운 노하우를 저만의 시각을 담아 새로운 작업에 반영시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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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는 것을 즐기면서 일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포토그래퍼로서 어떨 때 나에게 일이 잘 맞고 재미있다고 느끼나요?
사진은 사실 손이 많이 가고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에요. 몇 시간을 투자해서 사진 한 장을 건지니까요. 어떨 때는 결과물이 굉장히 멋있게 나와서 만족하고 정신을 차려 보면, 주변이 난장판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제가 빛을 어떻게 써서 이렇게 찍어야겠다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설계해서 촬영을 했는데 의도된 대로 결과물이 딱 나왔을 때의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사진에 의도된 대로 빛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사진가의 능력이거든요.
촬영 현장은 온통 난장판에 정리할 것이 산더미이지만, 결과물이 잘 나온 데에 너무 만족하고 좋아하는 제 모습을 볼 때 이 일이 저에게 정말 잘 맞는다는 것을 느껴요. 촬영하는 과정 자체가 전 너무 재미있고, 제 의도대로 하나의 작업물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게 큰 성취감을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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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한 연출을 위해 다양한 소품을 모아 놓은 스튜디오 홀리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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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로서 ’대장‘은 어떤 면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보나요?
'사진 대장'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 사진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빛을 활용하는 능력이나 보정 등 스킬도 중요하지만, 돈을 아무리 비싸게 주고 배운다 한들 단기간에 늘 수는 없기 때문에 혼자 많이 찍어보는 경험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결국엔 나의 색깔을 만들고, 그게 사진작가로 갈 수 있는 길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진을 좋아해야 해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사진작가가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들도 많아요. 천여 장의 사진 중에서 A컷 2~3장만 뽑아야 한다고 하면 그 많은 사진을 다 돌려보면서 몇 장을 고르고, 찍었던 사진 중에서 미세한 디테일을 수정해서 다시 찍는 등 무척 힘든 과정이 많아요.
이런 반복적인 작업을 지치지 않고 해야 좋은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건데, 이 모든 것들은 사진을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사진을 좋아한다'는 게 사진 대장의 가장 중요한 면모라고 생각해요.
스튜디오 홀리몰리 이수민 님이 지닌 '대장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사진에 대한 '집요함'이 제가 지닌 대장력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핸드폰 카메라도 너무 좋아서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인스타그램에 '포토그래퍼'라고 검색해 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오거든요. 사실 포토그래퍼라고 해도 잘 찍는 사람이 있고, 못 찍는 사람도 있는데 일반인 눈에는 거의 비슷해 보일 수 있어요. 편집 프로그램도 좋아져서 합성을 하면 사진이 다 그럴듯해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아무리 편집 프로그램이 좋아졌어도, 원본을 완벽하게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림을 그릴 때 밑그림이 잘 돼야 채색이 잘 되는 것처럼, 사진도 원본이 완벽해야 보정도 잘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대로, 혹은 제가 의도하는 대로 원본을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그 집요함이 저의 대장력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소한 차이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사소한 차이가 사진의 디테일과 퀄리티를 만들어 내거든요. 그런 집요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튜디오 홀리몰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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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장 이수민 님의 다양한 작업물이 궁금하다면?
스튜디오 홀리몰리 인스타그램에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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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 집요해진다는 건, 그만큼 그 일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누군가는 '적당히 찍고 보정하면 아무도 모르는데, 뭘 그렇게까지 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정한 완성도와 타협하지 않는 것. 그 한 끗의 차이가 나를 대장으로 만들어주니까요.
이효리 님과 함께 의자를 만들던 이상순 님이 아무도 보지 않는 의자 밑바닥에 열심히 사포질을 하다가, "여긴 안 보이잖아, 누가 알겠어?"라는 효리 님의 질문에 "내가 알잖아"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떠올랐어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 집요함을 갖고 있다면, 좋아하는 일을 더 사랑하며 즐길 줄 아는 멋진 사람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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