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살리기 위한 행동을 해본 적이 있나요?
식물을 살리기 위해 물을 주고 햇볕을 쫴주며 키워 본 경험이 있을 것이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우리를 키웠던 부모님의 사랑도 있을 거예요.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우리 자신은 누가 살리고 있을까요? 매일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고, 깨끗이 씻고, 끼니를 챙겨 먹고, 마음과 몸을 돌보기 위한 취미와 운동을 하는 모든 행동은 전부 스스로를 살리기 위한 나의 '살림' 활동이에요. 그리고 내가 소중한 만큼 나 자신을 넘어서 내가 속한 지구,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을 살리는 데 살림의 에너지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어요.
오늘 레터는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이란 구호 아래 동물 해방을 위해 행동하는 동물 대장 윤나리 님을 만나 동물권과 채식, 해방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By. Editor Samin🐿️ |
|
|
동물 대장 윤나리 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동물과 지구를 살리고 싶은 비영리법인 '동물해방물결'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나리라고 합니다. 동물해방물결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 하고 있어요. 주로 회원분들과 소통하는 일을 담당하고, 단체 내 안살림을 맡아 꾸려가고 있습니다.
|
|
|
동물권에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채식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알려 주세요.
정치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는데 막상 공부해 보니 거대 정치 담론을 다루는 영역은 저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을 버는 일보다는 막연하게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 이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환경과 관련된 단체에서 일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환경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환경학을 공부하면서 기후 위기 때문에도 채식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채식을 하고 싶어 관련된 책을 읽게 됐고, 자연스럽게 동물권으로 관심사가 넓어지면서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동물 해방>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많은 비건 지인들이 하는 말인데, 알고 나면 이제 외면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오거든요. 동물권에 대해 알고 나니 이걸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2014년도였는데 그때는 천천히 채식을 지향하려고 닭까지만 먹는 폴로 베지테리언으로 채식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점차 '내가 굳이 닭을 먹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해산물까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지향하게 됐고, 그러다가 '내가 해산물은 굳이 꼭 먹어야 할까?'하는 생각에 닿으면서 완전 채식을 지향하는 비건이 됐어요.
|
|
|
왼쪽부터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yes24 / <동물 해방> ⓒ연암서가 |
|
|
비영리법인 동물해방물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채식을 시작할 당시에 자원 선순환을 실천하는 '옮김'이라는 NGO 단체에서 활동했었는데, 이 활동도 저에게 굉장히 큰 의미를 줬어요. 옮김이 은평구 청년허브에 입주하게 되면서 굉장히 많은 청년 NGO 단체의 사람들을 만나게 됐는데요. 환경 운동이나 예술 활동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만나고,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당시에 저는 대학에서 취업하기 위해 공부하고, 증명할 수 있는 스펙을 쌓는 것에 지쳐 있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청년 허브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분야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뭔가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실 여성, 소수자 인권, 환경, 동물 등 관심사가 굉장히 많았는데 계속 마음이 가는 건 동물과 관련된 일이었어요. 마침 어떤 동물 단체에 합류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완전히 제 커리어는 동물 쪽으로 정해지게 됐어요. 그 단체에서는 여러 사정으로 1년 만에 나왔는데, 제가 생각하는 일과 실제 단체에서 하는 일 사이의 괴리가 크게 느껴져서 좀 슬럼프에 빠졌었어요. 그러다가 그 단체에서 만난 동료가 동물권과 관련된 일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왔어요. 그 친구가 제안한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고, 또 그분과 함께 일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프로젝트성으로 일을 시작했다가 단체까지 만들게 된 거예요. 그때 저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했던 친구가 바로 지금의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랍니다.
|
|
|
NGO '옮김' 활동가 당시 윤나리 님 ⓒ본인 제공 |
|
|
동물 해방 운동을 하면서, '이런 일까지 해봤다' 하는 경험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초반에는 저랑 이지연 대표 둘밖에 없어서 저희 둘이서 모든 일을 다 해야 했어요. 인력이 부족하니 하나의 캠페인으로 최대 효율을 내기 위해서 언론이 주목할 만한 큰 임팩트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어요. 그 당시에 개 식용 철폐를 하기 위한 '동물 임의도살 금지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었는데요, 법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국회를 압박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사당 돔 지붕에 빔을 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국회의사당 돔 지붕에 불이 켜지는 시간에 맞춰 '개 도살 금지'라는 구호를 투사했죠. 국회 지붕에 메시지를 쏘는 시위 방식이 신선했는지, 당시 언론에서도 굉장히 크게 보도가 됐어요. 국회 내에서 한 시위는 아니었기 때문에 처벌할 법령이 없어서 이런 종류의 시위를 막기 위한 규정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다른 단체에서도 '우리도 빔 프로젝션 시위를 하고 싶은데 팁을 줄 수 있느냐'는 식의 문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그 이후로 다른 단체들에서도 많이 하는 일종의 퍼포먼스가 됐고, 성공적이었던 캠페인으로 기억에 남아요.
|
|
|
국회의사당 지붕에 '개 도살 금지' 구호를 투사한 기습 빔프로젝션 퍼포먼스 ⓒ동물해방물결 |
|
|
또 소를 구해서 소 보금자리를 만든 것도 무척 의미 있는 활동이었어요.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은 많은 단체와 또 개인들이 노력해서 활발하게 구하고 계시고, 돼지나 닭을 구하는 단체도 있는데 사실 소는 엄청 크거든요. 그동안 소를 구한 단체가 있긴 했지만, 공간의 문제도 있고 해서 저희처럼 한 번에 여러 명의 소를 구한 단체는 없었어요.
저희가 총 6명의 소를 구했는데, 한 명은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돼서 지금은 5명의 소가 저희가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살고 있어요. 외국에서는 이런 보금자리를 '생추어리'라고 하는데, 저희가 국내 최초로 소 보금자리를 만들었어요. 한국 사람들이 '최초'에 집착하는 게 싫었는데, 단체를 운영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것들을 얘기하다 보면 뭔가를 최초로 한 것들을 꼽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
|
|
인제군 신월리 달뜨는 마을 보금자리에 입주한 꽃풀소들 ⓒ동물해방물결 |
|
|
소를 셀 때, 5'마리'가 아니라 5'명'의 소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부르는 이유가 있나요?
우리 단체는 처음부터 '동물 해방'이라는 기조로 시작했어요. 동물 해방은 인간이 동물보다 위에 있다는 시혜적인 관점의 '동물 보호'나 '동물 복지'와 달리, 인간과 동물이 동등하다는 입장이에요. 동물도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동물을 인간 마음대로 감금하거나 착취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 어떤 분들에게는 다소 급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동물 해방에서 중요한 개념이 '종 차별'이에요. 종 차별이 깊숙하게 들어가 있는 게 바로 언어인데, 우리가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그 개념이 확장되잖아요. 그래서 우리 단체에서 '종평등한 언어생활'이라는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한국말 중에 동물을 낮잡아 보거나 동물과 인간의 위계를 만드는 말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동물과 인간을 세는 단위가 다르다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종 차별을 없애기 위해 인간을 '마리'로 세는 건 좀 어색하고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 동물을 높여서 인간과 같은 '명'의 단위를 쓰기로 했어요.
또, 우리가 물고기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사실 '물에 사는 고기'라는 말이 굉장히 어색하잖아요. 살아 있는 생명체를 우리가 먹을 존재로 보고, 부른다는 게 말이 안 되죠. 그래서 우리 단체는 물고기를 '물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물살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
|
|
'종평등한 언어생활' 워크숍 현장 ⓒ동물해방물결 |
|
|
동물해방물결이 바꾼 가장 큰 변화의 물결은 무엇인가요?
우리 단체가 일으킨 가장 큰 물결로는 작년에 개식용 종식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일어난 변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개식용 금지법은 저희뿐 아니라 그전에 많은 동물권 운동가 선배님들이 만들어 놓은 거지만, 이렇게 빨리 논의가 진전되어 작년에 법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단체의 활동도 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예전부터 개식용과 관련된 메시지는 '개는 우리의 친구다'였어요. 저희는 모든 동물의 해방을 원하는 단체로서 그런 관점에서 좀 벗어나서 소와 돼지, 닭 모두 해방해야 하지만 가장 먼저 해방하기 쉬운 단계가 개라고 생각했어요. 개식용 산업을 없애고 나면 우리가 원하는 다른 동물들의 해방도 천천히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개식용 산업은 우리나라에만 있는데, 산업을 없앤다는 건 굉장히 큰 일이거든요. 동물 해방 단체 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선례가 쌓인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일으킨 가장 큰 변화라고 보고 있어요.
또, 저희가 소를 구하면서 인제군 신월리라는 마을에 소 보금자리를 만든 일도 단순히 소를 구한 것뿐 아니라 인구 소멸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어요. 신월리는 인구가 얼마 없어서 걱정이 큰 곳이었는데, 소와 소 돌봄이 청년들이 함께 신월리로 이주하면서 마을을 다시 소생시키고 있어요. 몇몇 청년들은 신월리 주민이 되어서 실제로 청년회장도 하고 있고요. 올 하반기에는 국가 지원 사업으로 신월리에 청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주거 공간이 완공될 예정이에요. 이렇게 청년들이 동물을 살리면서 마을도 살리는 케이스는 처음이라, 소 보금자리를 만든 일도 동물해방물결이 만들어 낸 중요한 변화의 물결 중 하나예요. |
|
|
일반 회사원과는 다른 운동가의 삶을 살면서, 단순히 업뿐 아니라 삶 자체에서 다르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요?
간혹 동물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돈을 안 벌 것이다, 봉사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일단 운동가라고 해도 다른 회사원들처럼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건 똑같은 것 같아요. 노동권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활동가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어쨌든 동물 해방에는 인간 해방도 들어가 있는 것이고, 내 삶을 내가 스스로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건 중요한 거니까요.
회사를 다니고 돈을 번다는 개념은 일반 회사원분들과 동일하지만, 다른 점을 찾자면 동물 해방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가장 첫 번째에 있는 신념이 비거니즘이기 때문에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태도를 갖고 살아가요.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신념이 가장 우선시된다는 게 좀 다른 점인 것 같아요.
해방 운동의 길을 걸으며 두렵고 불안할 때도 많을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이 길을 계속 걷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하나만 뽑자면, 함께 단체를 끌어가는 동료들이에요.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8년 동안이나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어요.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저를 포함해 많은 분이 번아웃에 빠지고, 바뀌는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많았어요.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운동을 하면서 저에게도 여러 번 위기가 왔었는데 그때마다 버틸 수 있게 하는 건 동료들이었어요. 물론 동물 해방에 대한 신념도 분명히 있지만, 지금은 동료들이 더 큰 것 같아요.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좋은 일을 하겠다고 모인 이 좋은 사람들이 아프거나 힘든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저도 열심히 하게 되고, 이분들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해요.
저희는 같이 일하는 동료이면서 결국은 동물 해방을 꿈꾸는 비건 친구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점이 저희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일을 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놓치기 쉽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동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면서 단체를 꾸려가고 있어요.
|
|
|
활동가들과 화천 산천어축제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윤나리 님(우) ⓒ동물해방물결 |
|
|
운동가의 삶을 살기 위해 지녀야 할 태도나 가치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운동가에게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누군가 어떤 일을 제안했을 때 '이건 이래서 안 될 것 같아, 저래서 안 될 것 같은데'하는 말을 하는 방어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었어요.
근데 이제까지 우리가 이 단체를 잘 운영해 오고 있고, 결국 모든 것이 잘 되었던 과정을 돌아보면 '어쨌든 해보지 뭐'라는 마인드가 제일 중요했어요. 단 한 명이라도 그래도 해보자고 얘기한 사람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거야'라는 마음을 갖고, 일이나 개인적인 삶에서도 그런 긍정적인 태도를 지니려고 해요.
사실 운동가라고 하면 과도하게 비판적이거나 투쟁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 비판적인 관점도 꼭 필요한 태도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마인드셋을 지닌 사람이 더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 일을 하다 보면 인간 혐오에 빠지기 쉬운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그 혐오가 너무 깊어져서 금방 지치는 것 같더라고요. 운동가는 희망을 계속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은 미약할지라도 계속하면 언젠가 된다, 내가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동물 대장으로서의 목표, 인간 윤나리로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동물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우리가 꿈꾸는 비건 세상을 만드는 게 가장 첫 번째 목표이죠. 초창기에는 운동 구호에 '동물 죽이지 마세요, 동물 먹지 마세요'와 같이 부정어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살린다'는 말을 쓰고 있어요. 동물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 마을을 살리고, 나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다 '살림'이잖아요. 저는 이 살림이라는 말이 너무 좋아서 이 세상이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살리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가끔 회원분들 중에서 '정말로 비건 세상이 올까요?'라고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 확신을 갖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네'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현실적으로 100% 비건 세상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신월리 마을처럼 지역 곳곳에 비건 마을을 만들거나 하는 식의 대안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세대에서 비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그리고 저 개인의 목표는 나 자신을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나와 내 동료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
|
|
'동물해방물결'이라는 단체 이름은 동물 대장 나리 님이 지으셨다고 해요. 어느새 이미 와버려서 맞을 수밖에 없는, 천천히 밀려오는 변화를 '물결'로 표현하고 싶었다고요. 변화라는 것은 굳은 신념을 지닌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이 속한 공동체에 스며들 듯, 번지듯 일으키는 잔잔한 물결처럼 찾아오는 것 같아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입장과 가치관들이 매일 싸우는 세상이지만, 언젠가는 비건인 사람도 비건이 아닌 사람도 모두가 서로를 돌보고 살리는 세상이 물결처럼 밀려온다면 참 좋겠어요.
축산업으로 생계를 꾸려 가던 신월리 주민들이 비건 청년들의 반려 소를 품어 주고, 축산업자를 적으로 규정하던 비건 청년들이 신월리 어르신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처럼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