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들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철학과 사유의 영역만은 아직 인간만의 것이 아닐까요? 지난 인터뷰에서 도예가 노솔 작가는 "공산품과 수공예품의 차이는 생각의 주체에 있다"고 말했지요.
도예가는 자신만의 철학과 사유를 도자기의 물성으로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러입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엔 파도의 자국이 남듯이, 도예가의 손이 지나간 자리엔 그의 자취가 남죠. 만지고 힘을 주어 누르고, 돌아가는 속도를 조절하며 넓히고 깎아내며 하나의 기물을 만드는 과정엔 시간만큼이나 도예가의 영혼이 담깁니다.
그리고 의도라고 부르든, 우연이라고 부르든 가마 속에서 예상치 못한 무늬를 입으면서 모든 기물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도자기가 됩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단 하나도 똑같지 않기 때문에 되레 특별한 거죠.
오늘 레터에서는 독특한 조형 언어로 자신의 영혼을 내보이는 도예가, 혹은 도예 브랜드 5곳을 살펴봅니다. 도예에 관심이 없던 분도 잠시 창의적인 도자기 언어들로 머리를 말랑하게 만드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By. Editor S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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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프리즘
🔴스튜디오 더 피날레 | 성실함을 새기는 진심 어린 여정
🟠진환민 | 백자에 불어넣는 날숨의 철학 🟡정지숙 | 한계를 모르는 영감의 세계
🟢삼작소 | 전통을 담는 젊은 감각
🔵두갸르송 | 수제 화분계의 에르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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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더 피날레 | 성실함을 새기는 진심 어린 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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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레터의 주인공이었던 노솔 작가는 주로 백자에 선을 긋는 디테일한 공예 기법으로 정교하고 차분한 도자기를 빚어요. 기물을 빚는 과정 하나하나를 '여정'이라 표현하는 그의 철학을 반영하듯, 노솔 작가는 손길이 남긴 불완전한 흔적들이 모여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작업을 고수해요.
그는 선을 그을 때 백자 위에 도안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대고 재면서 긋지 않는다고 해요. 실제 그의 작업은 기물과 칼, 두 개만 가지고 홈을 파내는 간결한 과정으로 이뤄져요. 순간의 감각에 의지하면서 작품에 몰입하는 시간을 직관적으로 새기는 작업이죠. 그의 백자는 작가의 성실한 진심을 증명하는 거울처럼, 파인 홈 하나하나에 감동이 옹골차게 담겨 있어요.
주전자, 호롱처럼 굴곡진 기물에까지 홈을 파내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노솔 작가의 작업이야말로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비효율적인' 예술이라고 생각됩니다. 효율을 택하는 순간, 예술의 의미는 퇴색되기 때문이에요. 스튜디오 더 피날레의 '피날레'는 마지막이라는 뜻이지만 노솔 작가의 작품은 저마다의 여정이기에, 마지막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고 해요. 노솔 작가의 작업 과정을 보며, 끝이라는 결과보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로소 탄생하는 공예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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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환민 작가는 안료 거품을 불어넣어 생긴 우연의 형상으로 작품을 만드는 도예가예요. 자신을 'Bubble Artist'로 소개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초벌한 도자기에 청화 거품을 활용해 포도, 용, 물고기 등 전통 문양을 그려 넣는 것이 특징이에요.
작품 자체의 기발함에도 감탄이 나오지만, 더 주목할 것은 작가의 철학이에요. 만남과 사라짐에 대한 순환적 세계관과 들숨과 날숨에서 기인한 철학을 도자기 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삶에 대한 진중한 고민을 도자기의 언어로 내보이는 그의 다음 이야기도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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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숙 작가의 작품 세계는 주로 상상 속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생명체를 그리고 있어요. 즐겁다, 흘러간다, 해방, 자유, 욕망.. 오감으로 감각되는 영감들을 직관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 도자기로 생명을 불어넣어요.
작품의 대부분이 눈과 코가 달린 사람이거나 팔과 다리가 달린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익히 알고 있는 평범한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어요. 익숙한 형태에 정지숙 작가만의 상상을 얹어 만나보지 못한 영감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어요.
정지숙 작가는 '생명체로서의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감각'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해요. 그러한 고민이 담긴 오브제들이 둥글둥글한 원과 곡선의 형태를 띤 귀여움의 결정체인 것을 보면, 정지숙 작가는 인간을 무척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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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좀 더 실생활에 가까운 도자기를 만나볼게요. 수공예 도자기 브랜드 '삼작소'의 김윤삼 작가는 예부터 쓰임이 있던 갓, 맷돌, 측우기, 기와 같은 물건들을 모티프로 식기를 만들고 있어요. 도예의 길을 걷는 것 자체도 전통의 맥을 잇는 행보이지만, 기물의 형태에 옛것의 선과 모양을 담는다는 발상에서 작가의 단단한 가치관을 느낄 수 있어요.
엽전받침, 윷접시, 태극접시, 갓볼 등의 이름으로 탄생한 김윤삼 작가의 그릇은 음식이 담겼을 때 돋보이게 하는 무채색의 유약을 쓰고, 기능적인 쓸모까지 고려해 제작됐어요. 하나하나 손으로 빚는 '작품'이면서도, 실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쓰임을 강조해 모두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작가의 철학이 반영된 거죠.
투박한 흑토의 물성으로 선의 미려함만을 담백하게 담은 도자기에서 느껴지는 기품이 소박하면서도 강인한 우리 민족의 기백을 닮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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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키우다 보면 자연스레 화분에 관심이 생기게 됩니다. 예쁜 화분을 파고, 파다 보면 누구나 만나게 되는 유명한 브랜드가 있죠. 바로 두갸르송이에요. 고급 수제 화분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두갸르송은 2011년 박정진 대표가 식물을 기를 만한 예쁜 화분이 없어 직접 화분을 만들면서 시작됐어요.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입고 1분 안에 품절되고, 전국에서 3곳에서만 살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에는 입고 당일 새벽부터 화분을 사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섭니다. 수작업이라 공급량에 한계가 있어 두갸르송 화분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죠.
두갸르송 이전에는 '화분을 누가 비싼 돈 주고 사?'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두갸르송 이후부터는 비슷한 고급 수제 화분 브랜드가 무척 많아졌어요. 두갸르송의 매력은 식물을 돋보이게 해 주는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과 통기성과 물 마름이 좋은 테라코타 화분이라는 점이에요. 유약분도 있지만, 두갸르송의 시그니처는 흙 본연의 빈티지한 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토분이거든요.
사랑하는 식물에게 그에 걸맞은 옷을 입혀주기 위해 없던 시장을 만들고, 가드너들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 화분'을 선물하는 두갸르송. 모든 명품의 시작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프리미엄으로 만들고자 하는 프라이드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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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레터는 '예술가의 작품을 대체할 수 없는 오리지널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인간에게는 저마다 다른 의지가 있습니다. 기계가 상상해 내지 못하는 고유한 철학이 있고, 기계는 갖지 못할 영혼이 있죠. 영혼은 개성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예술이 지닌 '한 끗 차이'는 그 개성을 얼마나 더 발휘해서 얼마나 더 붙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인간의 의지에 달렸어요.
예술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예술의 의미는 비효율성에 있습니다. 자신의 작업물에 비효율을 더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몇 날 며칠이 걸리든 기꺼이 그 비효율을 감내할 수 있는 무모함은 오직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의 다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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