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동네'란 무엇인가요?
아주 어릴 때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둘, 동네 주차장으로 모여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뛰어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스름이 깔리고 밥 짓는 냄새가 퍼지면 집집이 누군가를 부르는 따뜻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그러면 또 보자는 약속도 없이 꾀죄죄한 고사리손을 탁탁 털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저에게 동네란 출근을 위해 문을 나서는 곳, 잠을 자러 돌아가는 곳, 그 정도입니다. 지금 우리는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너무도 쉽게 참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아가요. 그러나 정작 내가 늘 돌아가는 곳, 내가 가장 나다운 나로 존재하는 곳인 동네에서 '연결'은 꽤나 불편한 단어가 됐어요. 출근길 현관을 나서려 할 때 옆집에서 들리는 도어락 소리에 5초 정도 기척을 숨겨본 적, 누구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망원동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답니다.
직업도, 나이도, 본적도 다르고 오직 '망원동'이라는 공통점만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싶어 운동회를 하고, 봄 소풍을 가고, 노래자랑 대회를 한다고요.
The Forge의 첫 레터에서는 망원동의 이상하고 즐거운 변화를 이끌고 있는 망원동 청년 대장, 박찬희 님을 만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들어봤어요.
오늘의 레터가 동네 골목대장 출신의 모든 어른이들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얹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By. Editor Sam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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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 대장’은 어떤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망원동 청년회장 박찬희입니다. '망원동 대장'으로 The Forge의 첫 번째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이에요. (웃음) 저는 망원동 청년회를 조직한 청년회장으로서 망원동 동네를 기반으로 한 재밌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망원동엔 언제부터 계셨나요? 어쩌다 망원을 이토록 사랑하게 된 건지.
고향은 강원도 태백이고, 회사에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던 2018년에는 회사 근처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출근할 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없고, 퇴근하고 나서는 회사에서 있던 일을 털어낼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 그 당시 자주 가던 동네가 망원동이었는데 문득 '여기에 있으면 너무 즐겁다, 한번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망원동에 터를 잡게 되면서, 어느덧 이곳에 살게 된 지 6년이 되었네요.
대장을 이끈 망원동만의 힘은 무엇인가요?
망원동은 매력이 확실한 동네예요. 일단 젊음과 오래됨이 조화롭고, 오직 망원동에만 있는 특색있는 로컬 가게가 정말 많아요. 그런 가게를 방문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사장님들도 손님에게 더 친절한 것 같아요. 사장님, 그리고 손님끼리도 가게에서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그런 망원동만의 분위기가 있거든요.
그래서 어느 가게를 가도 에너지를 많이 받게 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많이 나는 동네예요. 제가 아무래도 강원도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보니, 이런 사람 내음 나는 동네가 저랑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망원동이 좋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청년회를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어쩌다가 청년회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망원동 청년회를 시작하고 운동회를 연 게 아니라, 운동회를 열고 나서 망원동 청년회를 만들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운동회가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을 모아 기획팀을 꾸려서 운동회를 기획하다가 운동회를 주최하는 단체가 필요하지 않나 싶었어요.
그때 당시 동네 가게 사장님들도 많이 알고 있고, 동네 사람들이랑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망원동 청년회장'이란 별명이 생겼었거든요. (웃음) 그 별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닉네임처럼 사용하다가 운동회를 열기 위한 단체로 '망원동 청년회'를 처음 만들었어요.
그런데 망원동 운동회가 예상보다도 훨씬 더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망원동 운동회를 통해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많이 느껴서, 운동회만 하고 끝낼 게 아니라 진짜 '망원동 청년회'가 돼서 이런 비슷한 기획을 많이 해보자는 생각에 공식적으로 망원동 청년회를 시작하게 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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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청년회의 운영자는 몇 명이고,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제 동네 친구와 디자이너인 친구, 그리고 동네 상권 사장님들과 운동 PT 선생님 등 지인들을 섭외해서 운동회 기획과 행사 운영을 했고, 그때 행사 운영진이 초기 망원동청년회 멤버가 되었어요.
그 당시 한창 주변에 '나 망원동에서 운동회 하는 게 꿈이야. 무조건 하고 싶어'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거든요. 운동회 개최가 조금씩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주변 지인들을 섭외하게 됐어요.
올해 초 멤버 재구성을 거쳐 지금은 총 8명이 운영하고 있어요. 각자의 목적은 다르겠지만, 다들 기본적으로 매사에 열정이 있고 자기 일도 야무지게 잘하는 사람들이라 서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어요.
망원동 운동회 참가자가 꽤 많아서 놀랐어요. 운동회 참가자는 다들 망원동 주민이거나, 주변 지인들이었나요?
망원동 운동회 참가 자격이 꼭 망원동 주민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망원동 운동회가 사람들이 망원동에 한 번 더 오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기 때문에 외부 유입이 있어도 전혀 상관없었거든요.
그래서 운동회 홍보를 위해 온라인으로는 인스타그램 광고를 돌렸고, 오프라인 광고로는 망원동 일대에 한 50곳 정도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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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어쩌면 망원동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은데, 가게 내부에 포스터를 붙인다고 했을 때 대부분 우호적인 반응이셨어요. 이런 부분도 망원동의 인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포스터뿐 아니라 운동회가 지역 상권 활성화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로컬 상점들에 할인 쿠폰도 요청했었는데, 20개가 넘는 곳에서 후원을 해주셨고, 100장이 넘는 쿠폰을 후원해 주신 곳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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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참가자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운동회에 왜 참가하셨을까요? 운동회를 통해 무엇을 얻어가셨는지 궁금해요.
다들 '운동회가 너무 하고 싶다'는 비슷한 마음으로 참여하셨어요. 어렸을 때 가장 재밌는 행사가 운동회잖아요. 성인이 된 이후로는 청팀, 백팀 나눠서 경쟁하는 학창 시절 운동회를 떠올릴 기회가 많이 없었으니까요. 어린 시절 운동회와 같은 경험을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운동회에 참가하신 분들은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와 추억을 얻어가신 것 같아요. 참여한 분들끼리 지속적으로 관계가 맺어지는 걸 봤거든요. 운동회를 통해 형성된 공감대를 바탕으로 SNS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응원하면서 참여자들 간 연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운동회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관계의 폭이 넓어진 부분이에요.
지금까지 망원동 청년회가 기획한 활동들을 소개해 주세요.
2022년 개최한 제1회 운동회를 시작으로, 그다음 해 봄에 망원동 봄 소풍을 떠났어요. 봄 소풍에서는 종이비행기 날리기, 미니 사생 대회, 수건돌리기, 보물찾기 같은 놀이를 했어요.
또, 망원동 운동회 회식 때 노래 잘하는 분이 굉장히 많다는 것에 영감을 받아서 망원동 노래자랑 대회도 열었고요, 연말에는 산타 분장을 하고 동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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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분이 저희에게 역으로 제안하신 활동도 있었어요. 망원동에서 40년 넘게 이발소를 운영해 오신 이발사님이 건강상 문제로 문을 닫게 됐는데, 우리 동네 청년들이 은퇴식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해 주셔서 망원동 이발사님 은퇴식을 해드린 적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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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의 본업은 무엇인가요? 본업과 병행하는 데 있어 힘들거나 고민되는 점이 있다면요?
저는 항공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데요, 작년까지만 해도 청년회 행사가 많아서 제가 청년회 운영에 몰입을 많이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일하는 동안에도 계속 확인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니까 일과 시간에 본업과 청년회 일이 자꾸 병행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일하는 시간에는 최대한 청년회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런 부분 외에 본업과 병행하면서 힘든 점은 사실 없어요. 퇴근 후나 주말에 개인 시간을 써서 청년회 기획을 하는데, 어차피 이건 내 개인의 일이니까 개인 시간을 쓰는 건 아깝지 않아요.
그리고 본업과 청년회의 성격이 달라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제 본업은 말하자면 이미 꽉 채워진 책장에서 책을 잘 꺼내는 일인데, 청년회 일은 빈 책장에 책을 채우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청년회 일은 저에게 정말 새로운 자극이고, 이런 자극들이 제 본업에도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나름대로 제 일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다른 것을 해볼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제가 청년회 일을 하면서 당당할 수 있는 건 제 본업이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요. 제가 만약 제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일을 한다면 저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청년회 일을 할 거면 내 일을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끼고 있어요.
본업의 나와 대장으로서의 나, 그중 '진짜 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둘 다 '진짜 나'예요. 이전에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집에 가서도 자책하면서 생각의 고리를 잘 끊어내지 못했었는데, 운동회를 기획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퇴근하고 나서 회사 생각이 하나도 안 들었어요.
청년회를 하면서 생긴 긍정적인 변화인데, 퇴근하고 운동회 생각만 하니까 오히려 일과 일상이 딱 분리가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런 점에서도 청년회 운영이 본업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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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이 따로 있는 상황에서 행사 운영에 발생하는 여러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나요?
처음 운동회 비용은 100% 참가비로 충당했었는데, 진행해 보니 행사 운영에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다음에는 마포구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지원 사업을 신청해서 300만 원을 지원받아 망원동 노래자랑과 제2회 망원동 운동회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나랏돈을 받아 운영하니까 증빙해야 하는 것도 많고, 모니터링 회의 등 형식적인 것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나 마포구청에 물어보거나, 전화 받아야 하는 일이 많이 생겼는데 일과 중에 그런 일이 빈번히 생기니까 본업에 집중하는 데도 방해가 됐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국가 지원 사업을 신청하지 않고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 중이에요.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거나, 망원동 청년회 바를 만들어 운영하는 등의 방법들을 계속 고민 중인데, 이건 망원동 청년회가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인 것 같아요.
망원동 청년회가 기획하는 행사들로 변화했으면 하는 망원동의 구체적인 모습이 있나요?
우선 망원동 운동회가 이 동네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망원동 청년회를 통해 망원동을 청년들이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동네로 만들고 싶어요.
저희 운영진이 망원동에서 다양한 행사를 시도하는 것을 보고, '망원동은 진짜 재미있는 동네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다들 용기 내서 이곳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것들을 시작하게 될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 망원동에서 하고 싶은 기획이 더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최근에는 독립 서점 '로우북스', '책바' 사장님을 심사위원으로 모시고 자유롭게 말하고 듣고 쓰는 망원동 제1회 백일장을 성공적으로 끝마쳤고요,
10월에는 제3회 망원동 운동회가 열리고, 연말 행사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때쯤에 뭔가 또 재미있는 걸 하게 될 것 같으니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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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일의 대장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어떤 일의 대장이 되려면 확실한 목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걸 왜 하는지에 대해 자기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도 납득시킬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무언가의 '대장'이라는 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고, 결국에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이들을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일의 대장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망원동 청년회의 목적은 '즐거움'이에요. 늘 망원동에서 뭐 하면 재미있을까? 이런 질문을 근간으로 행사를 기획해요. 청년회 운영진도 이런 목적에 공감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에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찾자면, 굳이 망원동 청년회가 아니어도 되는데 이분들이 저와 함께하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공감하고 납득하는 '즐거움'이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청년회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다른 대장을 꿈꾸는 일이 있나요?
저는 아직은 망원동 대장으로 충분해요. 너무 많은 곳에서 대장을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여러 조직에서 다양한 역할을 경험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한 조직에서 대장의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직에서 팔로워 역할을 해봐야만 보이는 게 있어요. 그래서 망원동 청년회에서는 회장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어디서든 다 그곳의 대장이 되고 싶진 않아요. 지금으로서는 망원동 대장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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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청년회 회장 박찬희 님
마지막으로, 무언가의 대장이 되고 싶은 예비 대장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장, 뭐 별거 있나요?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이면 누구나 대장이 될 수 있어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용기를 내서 작은 일부터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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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망원동 청년회는
'제3회 망원동 운동회(10/12 토)' 참가자 모집 중이에요🏀
오늘 레터를 통해 망원동 운동회가 궁금해졌다면?
망원동 청년회 인스타그램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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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대장'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몰라요.
주변을 돌아보면, 지금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대장이 될 기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요!
지금의 나를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생각보다, 나를 위한 시간 중에 딱 한 시간만 다른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순간부터 우린 누구나 마음먹은 모든 것의 대장이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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